내가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나는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이다. 여러 번 연애의 실패 후에 결혼은 하지 않고 멋진 싱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그 다짐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렇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여자 나이로 보면 늦게 결혼을 한 편에 속한다고들 한다. 요즘은 초혼 연령이 늦어졌다고 주변에 말을 해봐도 정작 결혼한 선배들은 늦었다고 난리들이다.
결혼을 하니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부모님을 떠나서 독립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결혼 전까지 나는 노처녀 소리를 들으면서 부모님과 살았다. 우리 가족 중에 나는 막내딸이었는데, 그 유명한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 중에 막내였다. 어린 시절, 보수적이신 우리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통금 시간을 지키게 했고(물론 외박은 절대 금지였다.) 딸들이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오후 7시가 되면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어야 하는 집안이었다.
자유로운 나에게는 이런 제약들이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나보다 더욱 자유로운 언니들이 부모님과 싸워가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쟁취해 나간 덕분에 나의 20대는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독립을 서둘렀다. 아파트 계약을 빨리 해야 한다는 핑계로 먼저 나와 살기도 했지만, 부모님을 떠나 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몇몇은 부모님을 떠나서 살게 되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 이유는 내 공간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자매들이 많기에 내 방은 늘 없었고, 나는 언니들 사이에 끼어서 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내 방을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니 내 집이 생긴 것이다.(물론 자가가 아닌 전세이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했다.
결혼이 물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결혼을 한 부부이다. 이 시기에 결혼을 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하루 밤 사이에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원하는 방식으로 결혼을 준비할 수가 없었다.
뉴스 보니까 예식장에서 결혼할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대
그거 들었어?
요즘에는 식장에 100명밖에 못 들어간대
요즘 코로나19 단계가 바뀌었다는데,
너 결혼할 수 있겠어? 미뤄야 하는 거 아냐?
주변의 많은 걱정과 우려 덕분에 나와 남편은 열심히 하고 있던 다이어트는 포기한 체 매일 밤 술을 마시며 서로를 위로를 하기 바빴다. 그래도 어찌어찌 코로나19 시대에 험난한 결혼을 한 나는 이제부터라도 즐거운 신혼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세상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남자였다면 조금은 다른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대한민국에서 늦게 결혼을 한 여자이기 때문에 피해 갈 수 없는 질문들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는 늦게 결혼했는데 아이는 빨리 갖고 싶지 않아?" 주변인들이 물어볼 때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굴하지 않고 몇 번 더 이야기를 해보거나, 눈치를 보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정작 먼저 강아지를 키우자고 한 것은 남편이었다. 큰 언니네 강아지를 며칠 맡아 돌봐줄 일이 있었는데, 강아지를 돌보면서 그 녀석의 따뜻한 품에 남편이 먼저 반해버렸고 어느 날 남편이 내게 이렇게 제안을 해왔다.
“우리도 강아지를 키워볼까? 내가 밥도 주고 대소변도 치우고 산책도 매일 시켜줄게”
이런 말을 하는 남편을 보니 어릴 적에 엄마에게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지금의 쿠키 녀석이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우리가 쿠키를 데려온 것은 녀석이 태어난 지 3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인데, 처음에는 아주 조용하고 순했던 녀석이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아지를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당황했고, 강아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강형욱 영상을 매일 봤었다. 하지만 영상은 영상이고, 현실은 달랐다. 사전에 공부도 하지 않고 욕심으로 강아지를 데려왔기에 쿠키의 입질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영상을 봐도 쿠키는 교육이 되거나 나아질 생각을 하질 않았고, 매일 교육을 하겠다고 시도를 했지만 나의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거나 피가 나기 일쑤였다. 지금은 말도 잘 듣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졌지만 우리의 가족이 되기까지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이렇게 강아지를 키우면서 느낀 점은 양육을 한다는 일은 욕심만으로는 되지 않고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내게 누군가가 이제는 아이를 키워야지라고 말하면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기대가 되는 마음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를 낳은 선배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낳고 보면 별 거 아냐”
“키우다 보면 다 잘 키울 수 있어”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은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글은 나의 이런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글을 다 쓰게 될 때쯤에는 아이를 낳아야 할 확신이나 혹은 그렇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용기 그중 어느 것이라도 생겨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