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듯이 두서없는 새해맞이글
연말이 되면 늘 한 해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새해 목표를 세우는 글을 쓰곤 했다. 글을 쓰는 플랫폼이 바뀌고 문체가 바뀌어도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왔던 나만의 연례행사 같은 반성문 쓰기. 그런데 막상 올해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이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금 되돌아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눈앞이 금세 캄캄해졌다.
작년에 썼던 새해맞이 반성문을 다시 읽어본다. 참 이상하다. 내가 쓴 글이 맞는데 다른 사람이 쓴 글 같기도 하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지만 그게 어려웠다. 먼저 대화를 시작해도 내가 가진 부정적인 생각이 묻어날까 무서워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지 못했다. 대학생 때 자기소개서를 쓰면 번번히 '소통을 잘한다'라는 강점을 자주 내세우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란 걸 느낀 한 해였다. 사람 많은 장소에서 넋 놓기를 좋아했던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게 됐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게 숨이 막힐 정도로 무섭고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는 행위일 수도 있단 걸 알게 됐다.
SNS를 가볍다 여기며 계정을 전부 지우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없었다면 나는 2020년에 즐거웠던 기억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 할 뻔했다.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이 줄어든 한 해 동안 내가 겪은 작은 기쁨의 순간을 공유했던 공간마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는 일마저도 고통이라 여기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에게 SNS는 행복한 기억만 담아둔 작은 보물상자 같은 존재가 됐다.
멋쟁이 어른이 되고 싶어 내뱉었던 여러 다짐.
지키지 못한 나는 지금 못난 어른이 된 걸까?
아니면 그때 그런 다짐을 했던 나는 틀린 생각을 했던 걸까?
음, 글쎄.
아무래도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걸 보니 아직 멋진 사람이 되긴 글렀다.
본가로 내려온 뒤 집 안 구석구석 흩어져있던 인화 사진들을 모두 모았다. 여러 사진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아이는 사진을 넘길 때마다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부모 손 잡고 나온 소풍이 즐거워 웃다가도 무엇이 걱정인지 불안한 표정도 지었다. 물이 무서워서 젖지 않은 수영복을 입은 채 의자에만 앉아 있는 유치원생이었다가, 튜브를 탄 동생과 함께 해수욕을 즐기는 초등학생으로 금세 변신했다. 카메라를 좋아해 친척들의 여행 사진 곳곳에 나타났던 아이는, 중학교 수학여행 사진이라고는 온통 풍경 사진만 남긴 아이가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무섭던 것이 재밌어지기도 하고, 인생에서 가장 재밌던 것이 무서워지기도 하나 보다.
손바닥 뒤집듯 단순하게, 하지만 즐겁게 인생을 산 듯한 아이는 사진 한 장마다 완전히 낯선 사람처럼 나타나 나의 부러움을 샀다. 그렇게 사진을 한 장씩 앨범에 끼워 넣는 일을 마무리할 즈음엔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어린 날의 나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자신을 너무 어려운 사람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20년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가 어려웠다. 다른 이들의 질문에 올바른 답만을 내놔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혀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할 여유가 없었다. 2021년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생각을 다듬으려 애쓰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홀로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을 걱정하는 나보다, 오늘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가족과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 모두도.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