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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23. 2021

오늘

깊은 밤, 자정을 넘긴 시각에 아버지가 전화 한 통을 받고 황급히 온 가족을 불러 모았다. 고모가 숨을 쉬지 않아 응급실로 실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잠깐 넋을 놓았다. 눈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고 있었고 나는 문턱에 앉아 계속 넋을 잃고 있었다. 부모님이 그렇게 현관문을 나서고 난 이후에도 한참 동안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TV 소리만 집을 울렸다. TV 속에서는 천공의 성 라퓨타가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어릴  영화관에서 처음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일이 계기가 되었다. 동네 친구들의 집에 있는 모든 동화책을  섭렵했던 나에게도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세계관은  어디에서도   없었던 새로운 자극이었다. 주먹을  쥐고 눈앞을  가득 덮쳐오는 마녀 할멈과 오물 귀신을 무서워하며  마음을 다해 치히로를 응원하고 있던 그때,   옆에는 나보다   어린 동생과   어린 사촌 동생이 앉아있었고  건너 자리에는 고모가 앉아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길목에 피자헛 가게가 하나 있었다. 짙은 녹색 외관의 건물에 하얀색과 빨간색의 조합으로 인상적인 모자를 쓴 멋진 영어 간판. 엄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피자헛 간판을 볼 때마다 매번 두근거리기 바빴다. 동네 빵집에서 파는 피자빵이 알고 있던 피자의 전부였던 어린아이의 눈에 그곳이 마치 고급 레스토랑처럼 비쳤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으로 그곳의 문을 함께 열고 들어갔을 때 곁에 있었던 건 고모였다. 고모와 함께 나오는 내 손에는 녹색의 매끄러운 얇은 리본으로 묶인 작은 포장 상자가 들려있었다. 조각 피자 냄새가 솔솔 배어 나오는 딱딱한 종이 상자 냄새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응급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엄마는 나에게 내일 출근해야 하니 먼저 자고 있으라고 했지만 잠이 도통 오질 않았다. 당연히 내일 점심시간에 문병을 가면 될 것이라 스스로 다독이기 위한 생각을 하면서도 어딘가 한구석에서는 끝내 주체하지 못할 불안함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뒤척였을까?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무겁게 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발소리를 들으니 당장은 엄마 혼자 돌아온 듯했다. 나는 애써 감고 있던 눈을 결국 뜨고서 거실로 나와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어서 더 자라고 했다. 나는 묻고 싶지 않지만 물어야만 하는 질문을 했다. 어떻게 됐어? 엄마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 짧게 말했다. 죽었어.


고모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말이 나에게 주는 무게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선잠을 자다 출근 시간이 되어 일어났다. 거실에선 아버지와 할머니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그리고 내 아버지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감으며 연가가 얼마 남았던가, 특별휴가를 낼 수 있던가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장례 절차를 다시금 확인했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른이지만 그래도 어리게만 보이는 사촌들, 무엇보다 힘들 고모부의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을 메고 출근하겠다 인사했다. 퇴근하며 장례식장으로 오라는 아버지의 말소리를 들으며 문을 나섰다. 날이 많이 추웠다. 밤새 우박이 내린 흔적도 보였다. 투석을 오래 받은 고모는 해가 갈수록 몰라볼 정도로 많이 야위어갔다. 이런 날 밤새 병원을 향해 달렸을 거라 생각하니 고모가 너무 많이 춥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고서 아파트를 나서며 오늘 출근해서 어떤 업무를 해야 할지 생각했다. 어제 정리를 마친 자료 조사도 보고를 해야 하고, 출장 일정도 정리를 해야 한다. 그러다 문득 고모 얼굴이 생각났다. 그리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고모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빠르고 또 무섭게 다가올 줄은 미처 몰랐다. 이렇게나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면 더 말해줄 걸. 후회하는 만큼 눈물이 계속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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