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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ame b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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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29. 2021

same boat ,

숨 고르기

두통이 또 시작됐다. 시는 아직 귀가하기 전이다. 머리 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버텨본다. 캄캄한 방의 불을 켤 의지도, 팔을 뻗어 핸드폰을 잡을 의지도 없다. 머리의 오른쪽을 강하게 짓누르는 두통은 슬슬 눈과 광대 밑까지 세력을 넓히고 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이불속에서 그저 웅크린 채로 시가 빨리 와주기를 바랐다.


큰 소리가 굳게 닫힌 방 문을 타고 넘어온다. 시가 귀가했다. 이윽고 이 조용하기만 한 방 안의 정적이 서서히 깨진다. 이불 위로 손길이 느껴진다. 그제야 나는 손을 뻗어 시의 무언가를 찾아 더듬거린다.


“아파?”

“응.”

“많이?”

“응.”


물기 어린 목소리에 시는 외투만 벗고는 내 곁에 눕는다. 그러면 나는 시의 배를 찾아 머리를 요리조리 이불 바깥으로 내어본다. 베개보다 푹신한 시의 배 위에 볼을 갖다 대고는 서서히 머리의 힘을 풀면 이상하게도 두통이 사라진다. 시는 종종 이렇게 나를 위해 마법을 부린다. 나는 이렇게 시의 배 위에서 안식을 찾는다.


“리.”

“응?”

“아프지 마.”

“응.”


나는 사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실 많은 말을 듣고 싶었다. 시는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한다. 시의 배 위에서 나는 또 어느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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