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Dec 16. 2021

고통

사랑을 논하기 이전에 사람을 논해야 한다. 그러니 저 창틀에 기대어 서서 지긋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에 대해서 논해야 하지. 그는 매일 아침잠에서 깨 눈을 뜰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곁에 누군가 없으면 죽을 만큼 쓸쓸해한다. 어릴 적에는 그것이 무서워 아침결에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면 곧잘 이불을 한가득 끌어안고서 서럽게 울곤 하였다. 그것이 점차 잦아들었던 건 열다섯이 될 무렵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풍기는 외로움의 향기를 사랑한다. 그것이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서러움이 심장을 가득 짓누르고 있는 그를 한가득 내 품에 안고서 등을 도닥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내 가슴을 넘어 전해지는 그의 울음 섞인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릴 때도 있다. 평생을 끌어안았던 그런 그의 숨소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나는 나의 스무 살 생일날에 깨달았다. 그가 스물셋인 날의 일이었다.


내가 그의 손을 굳게 잡고서 나도 모르는  모든 사랑을 주었을 무렵, 문득 바라본 그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머나먼 예전부터 진작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의 온기를 사랑했고, 내가 도닥여주는 손의 울림을 사랑했을지언정 나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 사랑을 주고 있었지만 그가 주는 사랑은 그에 대한 답가일 , 그가 먼저 나를 향해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외로웠고, 나의  안에서도 쓸쓸했다. 나는 그래서 그를 끝없이 사랑할  있었다. 가히 팽팽한 관계였다.


창 너머의 그에게 다시 집중한다. 오늘 아침 그는 역시나 외로움을 안고 서 있다. 다가가서 손을 맞잡고 그 너른 등을 끌어안아 어제와 같은 나의 사랑을 다시 쏟아줄 수 있다. 언제나와 다르지 않은 아침을 그렇게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의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그 역시 나에게 불필요한 노래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에게 괴로움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그 역시 내 품에서 울지 않아도 좋다. 내가 서른이고, 그가 서른셋인 날의 일이다. 나의 서른 번째 생일에 나는 이 기이한 사랑을 비로소 멈추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짜 미상의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