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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Dec 21. 2021

심심한 하루

예감 한 봉지를 더 먹고 싶은데 꾹 참고 있다. 마지막 자존심이다.

오늘은 너무 심심한 하루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날이다. 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난 이후에 사람이 어디까지 지루함을 느끼는지 실험당하는 기분이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눈이 아주 초롱초롱하다. 지루하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가 보다. 오늘도 파티션 너머 상급자는 나의 키보드 소리를 듣고 내가 아주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겠지만 아니다. 나는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또 브런치로 피난을 왔다. 아침 9시부터 내가 이 건물에 들어와 생산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축내기는 정수기 물부터 모니터와 컴퓨터에 들어가는 전기까지 아주 쓸데없이 쓰고 있다. 예감도 한 번에 세 봉지나 먹었다. 머리가 쉬면 입이 심심해지는가 보다. 그러니까 사람이 아주 지루하면 아주 쓸모가 없어지는 것 같다. 프로 소비러가 되고 있는 것이지. 감히 단언컨대 백수일 때도 이렇게 하루를 지루하고 쓸모없이 보낸 적은 없었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상급자에게 '무언가 할 일이 또 없나요?'라고 물어도 할 일이 없단 걸 알기 때문에 묻기도 민망하다. 내일은 아마 일이 생기겠지? 희망을 갖고 출근하고 싶은데 사실 내일도 이렇게 지루하리란 걸 안다. 더군다나 상급자가 내일은 오후 반나절 내내 외근을 나가는 날이 아닌가! 더없이 심심할 것이다.


아무래도 내일은 무언가를 갖고 출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패드는 필참이다. 스도쿠 책도 좋은 후보가 될 수 있지. 스티커를 왕창 들고 와서 다꾸를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그래도 지루할 것이다. 아아 어제는 돈을 벌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는데 오늘은 일을 전혀 안 해도 돈이 들어온다.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 건물주보다도 스트레스가 없을 이 하루가 이제는 너무 귀하다 여겨질 정도다. 어제 피티 만들기를 끝내지 말걸 그랬다. 한 열 페이지 정도는 여유 있게 남겨두고 오늘로 넘겼어야 했다. 그럼 내가 지금 이렇게까지 지루하지 않을 텐데. 아아 일을 너무 빨리 끝내도 문제다. 이렇게 30일까지 출근해야 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이 지루함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나. 아~ 정말 너무 지루한 하루다. 지루한 일주일이 되겠지? 다음 주도 지루하겠지? 아~ 이 역시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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