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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Jan 02. 2022

안녕, 2021. 안녕, 2022.

연말이 되면 대청소를 한다. 창을 크게 열고 구석구석 묵은 때와 먼지를 날리고 윤이 나게 닦는다. 곳곳에 낀 흉을 벗겨낸다. 흐트러진 것들을 정돈하고 바로 잡는다. 시간 가는 것도 모르는 채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방 안에서 나던 아늑한 냄새에 찬 공기 내음이 밴다.


청소가 끝나면 그렇게 방이 주는 낯선 무게감이 처음에는 한없이 무겁다. 그러면 나는 자리를 펴고 방 한가운데 앉아 좋아하는 영화를 감상한다. 음악을 틀기도 한다. 청소를 하며, 혹은 이 한 해 동안 많이 지친 몸과 마음이 푹 쉴 수 있는 무언가를 즐긴다. 눈과 귀를 빠르게 흐르는 콘텐츠처럼 지나간 것은 잊고, 다가올 것에 기대를 품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방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익숙해진다. 버린 것을 아쉽게 생각했던 찰나의 감정도 새까맣게 잊을 정도로 무던해진다. 청소를 잘 마친 것이다.


여러  동안 해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며 지나간 해에 지키지 못한 것을 되새기고 다가올 해에 지켜야  것을 내세우곤 했다. 마음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묵은 고통을 지우고 상처를 지우고 오해를 지워낸다. 즐거움을 기억하고 성취감을 떠올리고 좋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새해의 연말에도 이럴  있기를 바라면서 하나씩 정리했다. 작년에도 아마 그런 마음과 기대를 품고 글을 썼을 것이다.


2020년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가 어려웠다. 다른 이들의 질문에 올바른 답만을 내놔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혀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할 여유가 없었다. 2021년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생각을 다듬으려 애쓰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홀로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을 걱정하는 나보다, 오늘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가족과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 모두도. 건강하게.


무언가를 사랑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홀로 괴로워하지 않았고, 내일을 걱정하는 나보다 가족, 친구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쓸쓸했다. 하루가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도 없던 그 이전 해를 떠올리며 이마저도 감사하다 여겼다.


그런 줄 알았다. 적어도 새해를 맞이하던 밤까지 나는 올 한 해를 성실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나를 비롯해 사랑하는 모든 이를 외면한 사람이 되었다. 홀로 괴로워하며 오늘을 돌아보지 않고 내일만을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뭔지 정확히 정의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생겨난 오해들에 맞서 나 혼자 싸우기엔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너무 많이 지쳐있다는 것도 더 빨리 눈치챘어야 했다.


새해에는 좀 더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되자. 새로운 사람 곁에서 여러 감정과 생각을 많이 보고 배우자. 스스로를 잘 정의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타인의 좋은 면만 보는 적당한 거리감을 배우자. 어렵겠지만, 많이 또 외롭겠지만 그래도 힘내. 힘내라. 꽃길만 걷기를 응원하는 이가 아직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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