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한 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Jan 07. 2022

동백 피는 겨울이면

2016. 4. 15.

생각이 많다는 것은 가끔 위험하다. 별 것 아닌 생각들이 아무런 방해도 없이 켜켜이 쌓여 견고해지면 어느샌가 하나의 편견으로 깊이 자리 잡는다. 그저 한 덩어리로만 보이는 편견 하나에는 사실 수많은 생각이 뭉치고 뭉쳐있다. 하지만 편견은 부실공사와 같다. 섣부른 판단으로 앞뒤 재지 않고 쌓고 또 쌓은 그것은, 매우 작은 빈틈 하나를 파고들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표정을 짓는 타이밍이나 표현을 하는 방식이 다르다보니 이렇다 할 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운 편견이 만들어졌다. 문제가 나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방관자로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도 퍽 잘 누리곤 했다. 늘 누군가가 먼저 와서 말을 건네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은, 그저 상대가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싫어서일 것이라 멋대로 판단하면서 그렇게 제 안에서 생각이 쌓이고 편견이라는 고고한 성이 만들어져 가는 것을 지독히도 방관했다.


그런 편견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늦겨울.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손짓 한 번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동안 마주하던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상냥함이었다는 사실은 나의 견고한 성을 그렇게 무참히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내 인생도 새롭게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다. 발끝까지 추운 겨울이 사실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해를 돌아 함께 맞이한 늦겨울. 눈빛은 건네도 마음은 끝내 건네지 못했다. 그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주머니 속에 쪽지 하나를 꼭 쥐고 나가곤 했다. 그리고 오늘도 책상  여전히 저에게 남아있는 쪽지를 바라보며 생각해보는 것이다.


당신은 아름답다.

다만 내가 너무 늦게 알아차렸지.

그러니 전부 나의 잘못이다.

당신을 여전히 좋아하는 것도.

당신이 여전히 좋아하는 것도.


반복되는 계절, 당신은 잊지 않고 나를 부른다. 당신을 잊지 말라는 듯이. 당신을 잊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 안의 두려움을 녹이듯 달래고 또 어루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