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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수 Nov 15. 2024

친구의 죽음 앞에서 삶이 더 선명하다.

죽음을 바라보다 삶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는 듯하다. 세상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간 누나의 죽음을 통해, 세상의 성취보다 가족의 중요성을 읽었다. 어릴 적 친구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간 친구의 죽음에서 지금의 삶에서 잡아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죽음 앞에 서면 살아 있다 는 것은 경이롭고 감사한 일이 된다. 죽음 앞에서 삶은 보다 선명해진다. 일상의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패턴을 끊고 보다 단순해진다. 

우리는 때때로 죽음을 상기하면서 영혼의 불필요한 가지치기를 하는 듯하다. 그래서 성경에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고 했을까? 고인의 죽음을 통해 생의 시간과 의미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주어진 삶의 과정을 좀 더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의지는 죽음을 인식할 때 생긴다. 죽음이라는 끝을 인식할 때 삶이라는 하루하루의 과정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중세 수도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인사했다. 라틴어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늘 죽음을 기억하며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 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겸허하게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원 정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말고 죽음을 생각하며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삶을 성찰하고 겸허하게 살기 위해서 모두의 죽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우리의 죽음은 모든 욕심과 영광과 아픔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직면하게 되는 죽음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감사하고 신비로운 일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알려준다. 이 삶에서 무엇을 누릴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답을 알려준다. 그리고 현재를 제대로 누리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나의 기쁨과 옆 사람들과 기쁨을 주고받기 위해 좀 더 과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작고 소소한 기쁨이라도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 잠식되지 않도록 과감하게 가지를 치며 지켜봐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tVf3v3u64lU 친구를 그리워하며 수노(SUNO) AI로 만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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