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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선 Dec 06. 2015

스타트업, 비전과 생존 사이

틀리기 위해 씁니다 #1 _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을 읽고.

ㄱ. 자, 주제부터 던집니다!

스타트업하면 수도 없이 듣고 보게 되는 말이 있죠?

스타트업은 강력한 비전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

근데 이거 정말일까요?

 사실 제가 이 생각을 해보게 된 이유는 책 때문이었습니다.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이라는 책을 정말 감명 깊게 읽었는데, 이 책의 핵심은 마지막 두 챕터에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중에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가 바로 11장, '비전보다 생존이 우선이다'였습니다.


ㄴ. 책 속에서는 뭐라고 했을까요?

 책 속에서는 일단 스타트업으로서 숙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비전과 생존의 문제'를 더 피부에 와 닿는 질문으로 바꿨습니다. 바로 이거죠.

생존을 위해 용역을 받아야 하는가, 비전을 위해 용역을 받지 말고 우리 서비스 개발에만 집중해야 하는가.

 챕터의 제목에서 벌써  눈치채셨겠지만, 이 책에서는 생존을 위해 용역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물론, 자신들이 직접 만든 서비스로 버틸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지 못할 경우에 말이죠. 즉, 호구지책이 먼저라는 겁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첫째로,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큰 그림과 비전만  바라보다가 당장의 생계 해결을 위해서 투자자를 찾거 빚을 지곤 하는데, 이게 상당히 위험하다는 거죠. 투자나 빚은 결코 공짜가 아니니까요. 둘째로, 용역을 받는 것 역시 B2B 비즈니스의 하나라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사업모델과는 거리가 있을지 몰라도요. 때문에 용역을 받으면 돈 벌기, 직원 교육, 제품 개발 세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수 있습니다.

 또한 투자자 입장에서도(저자가 인큐베이터 분입니다.) '돈이 없어 못한다는 아이디어'보다는 '작은 돈이라도 벌고 있는 아이템'에 더 투자하고 싶다고 하네요. 쉽게 말해, 스스로 수익을 내며 성장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스타트업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ㄷ. 지금부터는 제 생각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다만, 전제 조건은 '경험도 역량도 부족한 첫 번째 창업 혹은 대학생 창업일 경우'에만요.(왜냐면, 사실 제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하고, 제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거든요. 다른 경우는 어떠한지 모릅니다... ;;) 어쨌든 저도 미숙한 창업가들일 수록 비전보다는 생존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먼저 제가 생각하는 비전이란 무엇이며, 생존이란 무엇인지 정의해 보겠습니다.

비전 : 자신들의 업이 가지는 장기적 목표와 가치
생존 : 자신들의 역량을 활용해 최소한으로  먹고사는 단기적 수익모델

 바로 이게 제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에서의 비전과 생존의 정의입니다. 이걸 기준으로 생각해 볼게요. 제 정의가 틀리지 않았다면, 비전이란 '업'에서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업'은 당연히 그 팀의 '역량'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역량(생존) → 업 → 비전

 때문에 제가 미숙한  스타트업일수록 생존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가(저를 포함하 수많은 미숙한 창업가들이) 아직 비전을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는 것'

'둘째는 용역이 역량 개발과 기회 포착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마 '첫 번째 창업'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 혹은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어젯밤 세상을 바꿀 것처럼 가슴 뛰었던 아이디어도 오늘 아침이 되면 해골물이었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요. 그런 우리가 비전을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짧게는 3년 길게는 수십 년 뒤의 목표와 가치들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용역을 통해 당장의 생존부터 해결해 나가면, 비전 설정의 첫 단계인 역량 개발이 가능해집니다. 이게 미숙한 창업자들에게는 훨씬 중요합니다. 생존과 역량, 이 두 가지는 머나먼 비전보다 우리에게 더욱 피부로 다가오거든요. 비전 설정의 전제조건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덤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눈도 얻을 수 있습니다. 목적이 어찌 됐든, 우리가 외주를 뛰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분야의 '준비자'에서 '실무자'가 됩니다. 준비자로서 '이럴 거야, 저럴 거야'라며 예측할 때와는 달리, 실무자로서 새로운 문제점과 '진짜' 기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ㄹ.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요?

 우리같이 미숙한 스타트업들일 수록  생계유지에 한계가 왔다면, 외주를 통해서라도 직접 돈을 벌어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죠. 그러다가 그곳에 안주할 수도 있다고, 혹은 정작 내 일에 쏟을 시간을 빼앗긴다고.

 근데, 제가 지금까지 주장한 모든 것에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비전이 뭔지도 잘 모르고 돈은 벌어본 적도 없어도, 스타트업 해보겠다는 '우리의 꿈은 크지 않느냐'는 것이죠. 솔직히 다들 아주 먼 미래에 가슴 뛰게 그리는 모습 하나만큼은 위대하잖아요. 그러니까 스타트업하려는 것 아닌가요?

 전 그래서 그 꿈, 자신의 가능성만 잃지 않는다면, 외주를 받아도 안주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리 바빠도 밤새가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ㅁ. 그냥.

 어쩌면 이 글은 '자위'일 수도 있겠네요. 제가 지금까지 온 길이, 가고 있는 길이, 가려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않을 것이라고, 믿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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