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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널 G Jan 27. 2022

스튜디오 지브리 ①

[박동규의 느린작업실 602호] 아날로그 꿈의 공장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아시아의 월트 디즈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 애니메이션 작품들이다.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이란 뜻의 ‘지브리’는 그 의미를 그대로 실현하듯, 1985년 설립 이후 세계 애니메이션계에 열풍을 일으켰다.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중심으로 걸어온 햇수만도 30여 년, 현란한 CG와 3D가 범람하는 지금도, 지브리는 여전히 가슴 따뜻해지는 아날로그 정신을 고수하고 있다.

‘꿈의 공장’ 지브리의 작품들을 2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아무리 강한 무기가 있어도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거예요."

#. 미야자키 하야오 사상의 원형


1.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신의 성채인 지브리를 설립한 뒤 내놓은 첫 작품. 일본 개봉일은 1986년, 국내 개봉은 2004년으로 무려 18년 후에나 개봉됐다.

하야오 감독의 작품답게 문명 비판적이고 자연친화적이며, 창공을 비행하는 순간의 쾌감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하늘에 떠 있는 섬 라퓨타의 왕녀인 소녀 시타는 그러한 사실도 모르는 채 하늘의 해적들과 야심에 가득찬 군 장교 무스카에게 함께 쫓긴다. 우연히 시타를 구해내게 된 파즈는 아버지가 오래전 찍어온 라퓨타 사진을 보고 그 하늘의 섬에 대한 꿈을 키워온 소년. 라퓨타로 돌아갈 수 있는 비행석(飛行石)을 무스카에게 빼앗긴 시타는 파즈와 함께 해적들의 비행기를 타고 라퓨타로 향한다.

1986년작인 이 작품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데뷔작인 TV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처럼 밝고 쾌활한 ‘소년소녀 만화영화’의 느낌이 있는가 하면, 90년대 작품들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비극적 세계관도 짙게 투영돼 있다.


토토로와 만난 순간 기적처럼 쏟아진 행복, 꿈이었지만 꿈이 아니었어.

#. 토토로와 함께 신비한 숲속으로 ‘출발~’


2. 이웃집 토토로(1988)

1950년대 일본의 아름다운 시골마을. 상냥하고 의젓한 12세 사츠키와 장난꾸러기에 호기심 많은 4세 메이 자매는 아빠를 따라 시골로 이사온다. 입원 중인 엄마가 퇴원 후 요양하기 위해서다. 자매는 숲속의 정령 ‘토토로’를 알게 되고 덕분에 전원생활은 더욱 즐겁다. 그러나 엄마의 병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들은 어린 메이는 혼자 병원을 찾아가다가 길을 잃는다. 사츠키는 토토로의 도움으로 동생을 찾게 되는데….

1988년 일본에서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일본문화 개방 이후인 2001년 7월에서야 개봉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관심있던 사람들은 이미 다 봤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동양적인 가족주의를 서정적인 분위기로 담아낸 이 작품은 그간 서양풍의 막연한 세계관을 다뤄왔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존작과는 달리 구체적인 시공간을 바탕으로 한편의 수채화 같은 작화나 소박하고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이야기로 하야오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사춘기소녀 키키는 말한다,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지만 나는 쌩쌩하다고.

#. 초보마녀의 특별한 모험


3. 마녀배달부 키키(1989)

13세가 된 소녀 키키가 마녀 수업을 받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무거운 주제가 들어가 있지 않아 남녀노소 모두가 부담없이 볼수 있는 작품이다.

귀여운 주인공, 몽환적이고 예쁜 OST, 유럽풍의 배경 등이 어우러져 지금도 일본에선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하다.

제13회 일본 아카데미상, 1988년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콤비인 히사이시 조와의 네 번째 합작품으로 OST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고풍스런 유럽식 풍경과 시원한 비행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마녀이지만 평범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던 10대 사춘기 소녀 키키의 독립에 대한 두려움, 성장통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데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추억과 환상 속에서 현실을 찾아봐, 언제나 내일은 있을테니까.

#. 우리에겐 항상 내일이 온다


4. 추억은 방울방울(1991)

오카모토 호타루와 도네 유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다카하타 이사오가 연출을 맡은 작품.

1980년대 초반, 도쿄의 평범한 20대 직장여성인 다에코는 열흘간의 휴가를 내고 홀로 야마가타현의 시골로 농촌체험활동을 떠난다. 그녀가 남들과 달리 해외여행보다 시골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유년시절의 추억 때문. 방학이 되면 친구들은 모두 시골 친척집이나 할머니 댁에 가곤 했는데, 가족이 모두 도쿄에 살았던 다에코에게 산과 들의 전원생활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것. 새벽녘에 도착한 역에는 친절한 귀농청년 도시오가 마중을 나와 있었고 농촌 생활의 즐거움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가까워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20대 여성이 어린시절을 회상하고 현재를 고민하며 진정한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91년 일본 개봉당시 관객수 25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일본 아카데미상 화제상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자유로운 영혼의 포르코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 ‘하늘의 해적’ 잡는 낭만돼지


5. 붉은 돼지(1992)

‘저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끌어올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왕성한 식욕과 무지를 상징해온 돼지에게 고독, 로맨스, 순수, 낭만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DNA’를 주입시켜 새로운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 말, 마법에 걸려 돼지가 된 공군비행사 포르코는 바다가 아닌 하늘에서 해적행위를 하는 ‘공적(空敵)’들을 잡는 현상금 사냥꾼. 공적들은 잇따라 포르코에게 패하자 실력있는 미국 비행조종사 커티스를 고용한다. 커티스와의 대결에서 비행기가 부서진 포르코는 옛 친구 피콜로에게 수리를 의뢰하고, 이 과정에서 피콜로의 생기발랄한 소녀 피오와 함께 섬으로 돌아오는데….

이 작품은 사람이 돼지로 변신했다는 ‘마법’이 초월적 존재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포르코 자신의 선택임을 밝히면서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포르코는 전우이자 지금은 파시스트 이탈리아 공군 소령인 페라린이 포르코에게 그가 파시스트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음을 알려 주고, 파시즘 이탈리아에서 현상금 사냥꾼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으니 인간으로 돌아와 공군으로 복귀하기를 권하지만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인 편이 나아”라고 거절한다.

1941년생으로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않은 세대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적절한 유머와 로맨스를 통한 경쾌한 분위기로 묵직한 주제를 ‘튀지않게’ 표현했다.

지브리 작품 중에서 비교적 여성층과 아동층보다는 중년남성들의 코드에 맞춰져 있는데 미야자키 스스로도 ‘중년남성을 위한 만화영화’라고 일컫기도 했다.


사람들은 개발로 인해 너구리와 여우가 모습을 감췄다고 하죠?  하지만 변신할 줄 모르는 토끼나 족제비는 어디로 간거죠?

#. “사람들 미워” … 너구리들의 유쾌한 반란극


6.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

1960년대 도쿄 외곽의 숲에 살던 너구리들은 인간들의 ‘뉴타운 건설계획’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다. 너구리들은 ‘인간 연구 5개년 계획’과 ‘변신술 부흥’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바꿔 보려 하지만, 숲은 점점 좁아져만 간다.

산에서 자연과 더불어 숨어사는 너구리들이 인간의 개발에 의해 자신들이 보금자리를 잃게 되자 이를 막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갈구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너구리들과 자연을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을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환경보호를 주제로, 그것을 너구리들의 시점에서 그려냈다.

하지만 유쾌한 묘사에 비해, 너구리들의 계획은 전부 실패하면서 자연은 인간에 의해 개발당해 너구리들은 쫓겨나고 결국 인간들 속에 숨어 살게 되는 결말은 조금 씁쓸한 감이 없지않다.

TV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 ‘추억은 방울방울’ 등에서 일상의 리얼리티를 강조했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폼포코’에서는 규칙도 한계도 없는 엉뚱한 상상력을 날리면서도 직접적으로 현실비판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실제로는 프랑스의 68혁명 시기와 맞물리는 일본의 대학생 운동권 단체들의 연합조직 ‘전학공투회의(전공투)’를 비롯한 신좌파 학생운동의 몰락을 빗댄 작품이기도 하다.



[느린작업실 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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