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가 말했다.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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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면접관 하나가 내 앞에 있다. 그는 긴 테이블의 끝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정확히 그의 반대편에 앉아 있다. 우리는 세로로 긴 테이블의 끝 자리에 각각 앉아 있다. 테이블의 세로 길이가 매우 길고 멀어서 나는 그를 자세히 볼 수가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검고 둥그스름한 얼굴을 가졌다는 것, 이것 하나 뿐이다. 그 얼굴에는 큰 키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키가 작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한 손에 들린 나의 이력서를 훑어보았다가, 다시 나를 훑어보고, 또 이력서를 훑어보았다. 훑어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도 되는 듯이. 나에게 무언가 마땅치 않은 점이 있지나 않은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종이를 번갈아가며 살펴본다. 이럴 거였으면 테이블을 가로로 두고 앉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테이블의 가로 너비는 매우 짧은 편이어서 그는 나를 더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이윽고 그는 훑어보기를 중단하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 역시 그를 주의깊게 바라본다. 그는 자신의 기준대로 나를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랬다. 우리 둘 사이에는 해석과 경계와 억측이 가득하다. 나는 혼자서 그의 나이를 가늠해 본다. 40대 중반 정도? 40대 후반일 수도 있겠다. 결혼은 했을까? 아마 했을 것 같다. 인사팀 사람이겠지? 나는 인사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회사를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인간성을 지워버리려는 무심한 존재들이다. 내 앞의 이 사람 역시 자신의 인간성을 억누르고, 그 자신이 마치 회사가 된 듯, 아니 자신이 하나의 거대한 무생물이 된 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생물이 된 이 사람 앞에서는 나 또한 무생물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회사에 합격할 가능성은 아주 적어질 것이다.
그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질문들에 휘청이지 않기 위해 몸을 똑바로 세웠다.
"우리 회사에 왜 지원했나요?“
"몇 년 전부터 관심있게 회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최근 회사의 성장률이.."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어떤 생각으로 커리어를 전환하는 거죠?"
"스타트업에서 배울 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플랫폼 창업에 관심이 있는데.."
이런 식의 대화가 몇 분 더 이어졌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위 대답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회사를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지원할 만한 회사가 몇 곳 없었다. 3년이라는 짧은 경력을 가지고 경력직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경력직 채용을 하는 회사 몇 곳 중 하나가 이 회사였다.
또한 나에게는 창업이라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창업'이라는 단어가 스타트업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런 대답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 그가 던진 여러 가지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하기 위해 나는 머리를 쥐어짜서 모범적인 답안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말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렇게 전체적으로는 대부분의 질문에 잘 대응했던 것 같다. 이대로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질문이 나를 멈춰 세웠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셨는데, 가족과 일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고민했다. 당연히 나에게는 일보다 가족이 중요했다. 그러나 나는 무생물처럼 반응해야만 한다. 그리고 무생물에게는 가족보다 일이 더 중요해야만 할 것만 같다. 나는 감정을 배제하고, 인간성을 뒤로 한 채 오직 일을 잘하는 기계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정답이 있다는 듯 가족보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런 말까지 덧붙이면서.
"제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만약 야근을 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현재로서는 아기 계획도 없는 데다가 남편도 제 일을 적극 서포트하는 사람이거든요."
위 대답도 내 원래 생각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나는 야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고, 당장은 아니지만 우리를 닮은 귀여운 아기도 갖고 싶었다. 남편이 나의 일을 서포트한다는 것 하나만은 사실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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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의 대답을 듣던 그의 검고 동그란 얼굴에서 갑자기 슬픔이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을 지탱하고 있던 근육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힘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살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 살들이 아래로 천천 쳐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두 눈과 입술의 바깥쪽이 밑으로 흘러내려서 곧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버렸다.
슬퍼 보이던 그는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몇 장을 내려다보다가 등받이 의자 뒤로 몸을 젖히고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다가 다시 내렸다. 나는 그의 얼굴이 흘러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음, 이건 그냥 하는 말인데요.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라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나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내가 무언가 잘못 얘기했을까? 무생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킨 것인가? 결국 이곳에서 일할 수 없게 되는 걸까? 어떤 말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것일까? 수많은 생각에 휩싸인 채로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가 아기를 갖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너무 의외의 말이어서 나는 정말로 놀랐다. 면접관이 할 법한 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그 시간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죠. 와이프도, 저도. 저희는 정말로 아기를 원했는데 좀처럼 생기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을 다녔거든요. 하지만 매번 기대했다가 실패하고, 기대했다가 실패하고. 그 시간이 10년이었어요."
그의 얼굴이 흘러내리려고 했던 것은 그 10년 때문이었을까.
"젊은 부부를 보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일에 너무 치여살지 않기를 바란다고요. 일은 일일 뿐이거든요. 그러니까, 더 소중한 것들을 잊지 않았으면 해서요."
나는 대답없이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기 계획은 당연히 부부의 일이니까 그 누구도 상관해서는 안 되겠죠. 아기를 갖고, 안 갖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누군가는 아기를 정말 갖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일이 중요해서, 사느라 바빠서 이런 이유들로 10년이나 걸렸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는 더 이상 나를 경계하거나 억측하고 있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있었다. 그가 해준 말들은 별것 아닌 것 같았으나,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만큼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일에 치여살지 말 것. 소중한 것들을 잊지 말 것.'
당시의 나는 20대 후반의 나이였는데, 내 인생에 이뤄놓은 게 단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매우 조급해하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뭘 해야할 지 도무지 모르겠던 그 때. 결혼을 하자마자 일을 그만두어 버려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던 그 때.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그저 있어 보이는 것으로 내 삶을 치장하려고 했던 그 때.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준 사람은, 이름도 모르던 그 면접관이었다.
"저 사람은 왜 나를 붙잡고 이런 말을 하나 싶죠? 제가 면접자를 보니까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 같아서 그래요. 제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마 조급하고 불안하겠죠. 그래서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네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일이 아니라, 다른 데에 있으니까요. 아, 혹시라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그는 머쓱해하며 살찐 손을 들어 이마를 살짝 긁었다.
"아닙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면접관은 더 이상 나에게 무생물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다. 나는 그가 그 긴 시간 끝에 아기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했으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11년째에 아기가 생겼어요. 지금 여섯 살이에요."
그의 말에 나는 행복해졌다.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는 것들은 대단하거나 화려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소중한 것들, 그래서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옆에 있어주는 것, 물 한 잔 내어주는 것, 따뜻한 음식을 같이 먹는 것, 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러한 것들로 우리는 기운을 차린다. 휘청거리던 다리를 부여잡는다. 갖은 애를 다 쓰다가도 잠시 숨을 돌린다.
그로부터 이틀 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함께 일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는 그 키 작은 면접관을 회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면접에서 나눴던 이야기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더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