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어린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워킹맘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이 시기가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말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포털 사이트에 초등 준비로 검색을 해보면 수많은 영상과 글들이 나온다. 초1이 되기 전 7세에 어른 젓가락질 연습을 시키고 책상에 오랜 시간 앉아있는 연습도 해야 한다, 한글은 읽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며, 수학도 기초적인 연산은 할 줄 알면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학습 능력을 위해 미리부터 휴직을 하는 엄마들도 있다고 한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느라 아이의 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했으니 미리 휴직을 해서 팔을 걷어붙이고 한글과 수학을 가르친다고도 한다. 그와 함께 1학년 때 보낼 학원을 미리 알아보고 레벨 테스트도 봐야 하며 학교 적응과는 별개로 학원 스케줄도 세팅해야 한다고 한다.
나도 아이가 7세 후반에 접어들자 막연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휴직을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워킹맘은 초1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휴직하지 않아도 잘 버틸 수 있을까? 우리 아이는 당시에 통상 영어유치원이라 칭하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6세까지 잘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7세부터 영어유치원으로 변경했고 그곳에서 영어뿐 아니라 책상에 앉는 연습은 꽤 오래 했다. 또한 아침 일찍 셔틀버스를 탔어야 했기 때문에 7시 30분에 일어나서 8시 30분쯤 집에서 나가는 생활은 거의 습관으로 자리 잡혔다. 학교 등교시간 또한 이와 비슷했기에 등교에 대한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일을 하면서 이모님을 안 부르고 싶었지만 워킹맘에게 이모님의 존재란 필연적이었다. 이모님 없이는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할 수 없고, 있으면 훨씬 풍족하게 일에 집중하고 내 에너지를 배분할 수 있다. 그 에너지를 배분하여 회사에 집중을 하고 집에 오면 아이들에게 집중을 한다. 7세부터 이런 이모님과 함께 1년을 연습하였고 1학년 되고 나서 이모님이 변경되었지만 그 습관만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활습관 관련해서 따로 준비할 것은 없었고 오히려 이모님이 계시니 아침을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 습관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예상했던 대로, 의도치 않게 하드 트레이닝 된 아이는 학교 등교에는 문제가 없었다. 일찍 일어나서 밥 먹고 씻고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등교시간 15분 전 집에서 나가면 되었다. 어린아이가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일이 처음에는 매우 안쓰러웠다. 외할아버지는 몸보다 큰 가방은 너무 무겁다며 작은 가방으로 바꿔주라고 성화셨다. 하지만 가방이 큰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교과서를 가지고 다니지는 않지만 끝나고 바로 학원을 가야 할 경우도 있었고, 학교에 가지고 다녀야 하는 물통을 넣기에도 좋았다. 여름이면 카디건을, 겨울이면 금방 춥다가도 금방 땀이 나는 아이의 겉옷도 넣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가방과 함께하는 실내화 가방에는 때때로 스스로 가방에 넣기 힘든 공책들을 끼워넣기도 한다.
걱정했던 어른 젓가락질은 “엄마 나 스스로 어른 젓가락 해볼래.” 라며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서툴지만 잘 해내고 있고, 학교에서는 젓가락질을 못하는 아이는 어린이용 젓가락을 들고 다녀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예비 초1엄마분들께서는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한글은, 운 좋게도 아이가 5살에 다 읽었으므로 따로 읽기 연습은 안 시켜도 됐으나 쓰기 연습은 조금 시킬걸 하고 후회되는 부분 중에 하나이다. 어릴 적부터 소근육이 좀 느렸던 아이였는데 쓰기를 싫어하는 데다 소근육이 약하기까지 하니 1학년 때 쓰기 숙제를 많이 힘들어했다. (매일 10칸 쓰기 공책 한쪽 분량의 쓰기 숙제가 나옵니다. 2학기 받아쓰기를 대비하는 거 같아요.)
연산은, 정규과정을 배울 때는 미리 하지 않고 가더라도 괜찮지만 진도가 생각보다 빨리 나가기 때문에 충분한 연습량을 위해서는 한 학기 정도는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책가방을 메고 실내화주머니를 잊지 않고 챙겨 집에 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받은 알림장이나 유인물 등을 가방에 잘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는 거다. 요즘 우리 아이는 연산숙제를 공처럼 꾸깃꾸깃 구겨서 가방에 넣어온다. 하기 싫은 나머지 없어지길 바랐던 듯^^ 그래도 버리지 않고 가져오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손 다림질 한다.
결국, 초등준비의 모든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 그게 다다. 이것만 되면 여러 가지로 걱정했던 것들이 대부분 해결된다. 초등학교 입학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시는 예비 초1 엄마들께서는 걱정일랑 그만 멈추시고 스스로에 초점을 맞추시면 좋겠다. 옷은 스스로 입기, 벗은 옷은 빨래통에 스스로 가져다 놓기, 준비물은 스스로 챙기기, 음식을 먹은 후 스스로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기 등.
우리 집에선 ‘스스로’를 위해 칭찬스티커판을 사용했다.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칭찬 스티커판 사용하지 않는 시기에는 다시 도루묵이 된다는 단점도 있긴 하다. 그래도 스티커를 모으는 기간만이라도 스스로 했던 기억과 습관이 있던 아이는 학교에서 뭐든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할 거다. 익숙해지면 학교생활이 여유롭고 편해진다. 그럼 학교에서 하는 수업과 친구관계 등 다른 점들이 좋고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엄마 나는 숙제없는 학교가 정말 좋아.”
우리 딸램이 했던 말이다. 학교는 정말 좋은데 숙제는 싫다는 것. 고녀석 참, 중의적이다. 그래도 아직은 학교가는게 재미있다고 해주니 이 엄마는 고마울 따름이다. 예민한 기질이라 학교 가는 것도 힘들어하지 않을까 했던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어 참 고맙고 예쁜 딸이다.
워킹맘이 휴직을 하지 않아도, 초1 준비와 학기 기간 내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 세상엔 생각보다 초등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시스템들(사교육 포함)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 잘 골라서 배치만 하면 된다. 모든 엄마들 화이팅이다!
마지막으로, 초1만 몇년 째 맡은 선생님이 쓰신 에세이의 한 구절로 마무리 한다.
여러분. 애들이 오른쪽 왼쪽 구별하는 거, 줄 서는 거, 급식판 제대로 들고 걸어가는 거, 책가방 싸는거, 실내화 갈아 신는 거, 학교 화장실 이용법,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는거, 손 들고 질문 하는 거, 그거 1학년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치는 겁니다. 그냥 저절로 타고나는 거 아니에요...
- ‘초등샘z'의 오늘 학교 어땠어? 에세이 중에서
존경심이 절로 나오는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