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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Jan 16. 2017

프롤로그: 화장품 만드는 여자

"회사? 재밌어!"

"첫 주 어땠어?"라고 묻는 상사에게 "재밌어!"라고 망설임 없이 외치자 아직 신혼여행 무드라서 그래, 라며 웃어 보인다. 그녀 역시 매일매일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모르겠다.


로레알 프랑스 본사, 독일 니베아 본사를 거쳐 이 곳 아시아 태평양 총괄 오피스로 온 그녀는 한국의 상사와는 조금 다르다. 점심시간 즈음 출근하기도 하고, 금요일이라고 오늘 5시에 가자 를 외치기도 한다. 근무 시간이 평가의 잣대가 되지 않고, 돈 많이 받는 사람이 제일 많이 일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이 곳의 당연함이 아직은 사치스럽다. 


성분, 질감, 색상, 향기, 포장, 문구 모든 요소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일. 나의 '상상'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약 18개월 후에는 '상품'이 되고, 수 억여 명의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다. 짜릿하다. 


칼 라거펠트에 이어 패키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위한 아티스트를 찾고, 태양의 후예의 그 남자의 광고 촬영을 위해 상해로 날아온 촬영팀과 미팅을 한다. 생동감 넘치는 나날들이 계속되기를.


2016.05.29





결국 그 광고는 촬영 직후 사드로 급격히 악화된 한중 관계 때문에 한국 연예인 금지령이 내려진 탓에 빛을 보지 못하고 회사 사람들의 모니터 배경화면으로만 남았다. 주요 업무인 컨셉 단계부터 제품을 만들어가는 신상품 개발 일은 사건 사고 투성이다. 포뮬러 안정성부터 패키지, 생산 공장, 때로는 선박까지. 문제 해결이 내 일인가 싶을 정도로 문제가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꼬박 반년이 흘러 새 해가 밝은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요즘 일 어때?”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재밌어!”라고 외칠 수 있다. 다섯 개의 다른 국적 지를 가진 다섯 명의 팀원이 누구의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소통하며 근무하는 기이한 환경도, 독일 회사 특유의 효율을 중시하는 회의 문화에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중국, 일본 그리고 호주 시장을 타겟으로 한 신규 브랜드 출시와 두 건의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 바깥의 시장에 대해 배우고 있다. 소비자의 집을 방문하여 행동을 분석하고 심층 인터뷰를 하는 홈 비짓을 통해 다른 문화권 소비자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상사는 여전히 자유롭고 거침없다. 지위에 수반되는 결정과 책임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다. 상사에게서, 동료에게서, 소비자에게서 배울 수 있어 재밌다. 


생동감 넘치는 나날들이 계속된다.

신혼여행 무드에는 끝이 없다. 




상해에 위치한 독일계 뷰티케어 회사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 오피스에서 화장품 신상품 개발을 하는 브랜드 매니저. 꽃다운 스물여덟, 4년 차 유부녀입니다. 행복한 회사 생활과 더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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