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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Nov 01. 2023

[prologue] 여행 끝에 마주한 가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직후의 흥분됨,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타인의 칭찬에 대한 으쓱한 기분 같은 것들은 너무 쉽게 사라져 버렸다. 우당탕탕 시끄러웠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여름이 끝나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오래도록 염원하던 여행을 했던 여름에는 기쁨에 싱싱하게 젖어있었는데 건조한 가을이 되어서일까, 마음도 몸도 바싹 말라버린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침잠했던 초가을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북적이던 축제가 지나간 자리라면 더 황량하게 느껴질 수 있지' 하며 가만히 지켜볼 수 있을만큼 마음의 키가 자랐다는 것.  


"말이 너무 많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준비를 시작했던 초여름부터 나는 말이 너무 많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여행을 소문냈고 여행중에는 내가 여행을 얼마나 즐기며 잘지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말했다. 쉬지않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음을, 행복하다는 것을 떠들던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자 우울해 질 수 밖에 없었던 거다. 인정에 목메는 한 인간은 이렇게 여행도 경쟁하듯 '그 누구보다 잘하고 있음'을 누군가에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여행의 순간순간 충만하다고 느꼈는데 왜 그랬을까.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여행기를 글로 남겨야지 다짐했었다. 여행중에 남겨둔 일기와 사진들로 작은 책을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긴 여행을 마무리한 뒤 아이들의 감상을 인터뷰 영상으로 남겨볼까도 생각했고 여행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컨텐츠화 해보고도 싶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었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만 미루게 됐다. 이 여행 이야기가 내가 떠들고 자랑했던 것 만큼 화려하지 않을까봐, 완벽하지 않을까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고....)


해야 할 숙제를 미뤄둔 아이처럼 내내 마음 한켠에 '여행기'가 걸려있었다. 쓰고 싶은 다른 글감이 떠올라도 '아.. 여행기부터..' 라고 생각하고 또 미뤘다. "겨울 방학에도 여행 갈 계획이 있어?" 라고 누군가 물었다. 기나긴 겨울방학동안 따뜻한 나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아직 인도네시아 여행기도 못 썼는데....'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래, 이 여행기를 마무리 하지 못하면 다음 여행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정말 써야겠다는 마음이 먹어졌다.   


지금부터 시간을 돌려 처음으로 돌아가 길었던 여행을 곱씹어 보려고 한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존재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내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느끼고 어떤 순간에 행복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고 남기려고 한다. 쌀쌀해진 공기를 탓하며 가라앉아있던 마음에 좋은 치료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곳에서 나와 아이들이 얼마나 용기있었고 씩씩했으며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속에서 즐거웠고 행복했는지 되새겨보면 이 여행을 통해 나에게 남은것이 무엇인지 원석을 깎아내 마침내 발견하는 보석처렴 선명하게 보여질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글은 2023년 여름, 한 엄마가 아이 둘과 43일간 배낭을 메고 인도네시아 길위에 섰던 여정을 되짚어가며 기록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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