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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O Feb 01. 2016

제5차 산업의 주역; 프로슈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후조

몇 주 전이었던가.

Beecanvas 홍용남 대표의 글이 무언가를 깨우는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글을 씀으로써 화답하며 배움에 대해 빚을 갚으라 종용하였다. 스타트업이란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한 부족의 족장으로서 의무감과 당위감을 갖게 하는 글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emotional intelligence가 있는데 첫째는 나는 아직 글을 쓸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그 경계를 홍용남 대표가 성큼 다가와 커튼을 확 걷어제꼈고, 두 번째로는 스타트업계, 크게는 자본시장에서 내 글을 이해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니 쓸데없이 힘 빼지 말자는 생각이 그간 숨어서 활동하게 하는 족쇄가 되어왔지만 최근 한 기업의 보육센터 입주심사에 합격하면서 조금이라도 이 산업에 대해 이해자를 늘리자는 마음으로 쓰게 되었음을 초고에 올린다.




나는 2014년 7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타겟층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프로슈머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콘텐츠를 재창작, 재해석 하여 자신만의 팬덤층을 만들어 나가던 그 들. 방송과 모바일, IT라는 시대가 주는 변화와 편리함 덕에 알려지기 시작한 존재가 아니라 60년대부터 문화융성의 텃밭에서 문화가 예술의 한 섹션으로 머물다 산업으로 발전하게 한 그 주역들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미래산업의 주역들; 그 이름 후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9년 12월 9일,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집담회에서 의미 있는 발언이 시작되었다.

발표 주제의 제목은 「후죠시는 말할 수 있는가? '여자' 오타쿠의 발견」이었다. 이 논제는 차후 2010년 9월 30일, 일본연구 45호의 두 번째 목차에 실리기 되면서 실증의 힘을 갖고 글로써 많은 후죠시들에게 힘이 되었다. 그간 얼마나 말하기조차 힘들었으면 제목마저 말을 할 수 있는가로 지었을까. 그 정도로 자본시장에서, 일반 주류문화에서, 인류문학에서 배제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후 SNS의 발달로 인해 그녀들은 실제로 말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여성 오타쿠'라는 개념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엄연히 오타쿠와 후죠시는 다르다. 아니, 빼앗긴 말이다. 원래 오타쿠(お宅)라는 말은 60년대 후반에 오타쿠들이 모이는 이벤트나 모임에서 '댁네는 평안하십니까?' 정도의 인사말로, 인터넷 도입 시절 정모에서 '00님 방가방가'라 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연히  그때도 지금처럼 이벤트를 개최하고 상품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여성이 압도적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당연히 오타쿠=동인녀 정도의 이미지가 컸었다.

하지만 1975년, 일본 동인서클 「미궁」이 코미케라는 서브컬처 플리마켓을 주도하게 되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왔고(여전히 산업군 분포도에서는 음지이지만), 80년대에 들어서는 남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게 되면서 건담효과와 맞물려 남성 오타쿠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90년대에는 건담과 드래곤볼, 아키라 등 초대박 콘텐츠와 일본의 버블경제가 이들의 소비패턴을 캐치하여 키덜트 문화(장난감 향유층)만을 강제 육성하기 시작하자, 오타쿠 문화는 자연스럽게 남성 위주로 일반 대중에게 친숙함을 높여갔고 대중들은 점차 그 개념에 적응해 갔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그녀들이 근 20년간 구축했던 '말'을 잃었다.


그래서 대체 단어로 자리하게 된 것이 후죠시, 1980년 애니메이션 우르세이 야츠라(한국명:시끌별 녀석들, 타카하시 루미코)에서 처음 일반 대중에게 표출되었으나 2000년 인터넷시대에 들어서야 널리 보급되었다. 사실 PC통신 시절에도 종종 언급되곤 하던 단어였는데, 통신 커뮤니티가 생기면서 그녀들은 밖이 아닌 전파회선에 숨어 그 덩치를 불려 나갔고, 그 결과 내가 처음 후조계에 입문하던 96년에도 이미 본토(우리는 일본을 이렇게 부른다)와의 교류가 활발했다. 이 활동은 대체로 소설(이것이 나중에 인터넷과 맞물려 다음카페 등에서 인터넷 소설로 등장하고, 현재는 웹툰과 함께 웹소설이 되었다.)이 주류였고 그를 번역하는 번역자들이 가장 득세(?)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오타쿠 관련 용어는 모두 거기에서 파생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도 후죠시라는 BL류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한일 양국의 연구센터가 교류를 하게 되면서 차츰 자리 잡게 되었다.



후조란 무엇인가?

일본어로는 후죠시, 한국어로는 후조로 표기하는데 부녀자를 뜻한다. 이것은 양국의 페미니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애초에 후죠시는 일본발 단어이기 때문에 스스로 '썩은 여자'라 지칭하며 스스로 자중할 것을 종용하고 자조를 섞어 낮춰 부름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 낮췄는데 더욱 낮출 필요가 있냐는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子를 떼고 후조라 부른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므로 후죠시라고 하면 일본 여성 오타쿠를, 후조라고 하면 한국 여성 오타쿠라고 이해하면 된다. 또한 여권이 더 센 중국의 경우도 腐女로 부른다(이하 후조).

 "그래, 우리는 모두 썩었으니까 부녀자(腐女子)야!"

종종 이 후조를 향해 'BL을 좋아하는 여성'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후조는 동인녀(오히려 동인녀가 BL향유층에 가깝다)보다 광의의 개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모든 여성이 후조인 것이다. 장담하건대 이 쪽의 문화를 모르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세계 여성의 반은 후조라고 자신할 수 있다. 다만 숨어있을 뿐.



후조의 키워드; LGBT

이 키워드를 모르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주목하는 여성향 장르가 바로 BL이다. 단언하건대 BL은 3번째 장르다. 워낙 세분화, 파편화 되어 있어 그 실체와 장르를 다 파악하기 어렵지만 주로 대두되는 몇몇 장르를 놓고 볼 때, 후조계의 큰 장르는 NL, TL, BL, GL 4가지로 분류된다.


NL

쉽게 말해서 노멀 러브.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세계관으로 흔히들 말하는 여성만화, 소녀만화가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나라 대표 작가에는 김혜린, 황미나, 신일숙 등이 있다.

NL에는 우리에게 조금은 덜 친숙한 콘텐츠가 하나 존재하는 바로 장르물로 인식되는 '할리퀸'이다. 할리퀸에는 일반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할리퀸과 지골로 스토리의 역할리퀸 두 장르가 존재한다. 이 부분을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는 PC통신 슬램동의 번역자를 거쳐 다음카페에 19금 여성향 장르소설만을 다룬 비공개 카페를 운영하였는데 카페 가입 조건 자체가 '여성작가'일 것이었다. 그리고 1달 이상 활동이 없으면 강퇴하였다. 그런데도 회원수가 1,000명 가까이 되었다. 내 경우, 역할리퀸이 주종이었는데 내 본진(..)이 드래곤볼의 부르마인 것이 큰 향수로 작용했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 NL이 후조 장르의 45~50%를 차지한다. 미국 베스트셀러이자 영화화 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또한 할리퀸에 SM을 가미한 것이다.


TL

틴러브, 하이틴 청춘물이 아닌 청소년의 성애를 다룬 작품을 말한다. 15금~19금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98년 대여점을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춘기 미만 사절'과 '환상게임'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확대될 수 없는 장르이지만 여성만화 잡지로 잘 알려진 하나또유메(花と夢)의 서브잡지들에는 틴러브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익성 면에서는 당연히 BL을 앞지른다.


BL

웹툰의 대두, 정확히 말하면 레진코믹스의 존재로 인해 수익성을 인정받아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북미에서는 브로맨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출판만화 시절에도 한국에 BL 만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WHITE와 NINE 등으로 시도하기도 했지만 검열과 수익성 문제로 폐간되어 버렸다.

동인서클 CLAMP가 내놓은 '성전'이 공전의 히트를 쳐, 한국에도 수입된 BL이기도 했지만 쇼타콤이기도 했으며 키잡물이기도 했다. 절애(絶愛)가 정발되면서 평범했던 여학생들이 동인녀로 눈뜨기 시작했고, 지금도 찬양해  마지않는 '호텔 아프리카'의 존재는 소리 소문 없이 여학교들 사이에 퍼져 자본시장이 웹툰이라는 틈새시장을 허용하였을 때, 마치 준비된 사람들처럼 BL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20대 중반 ~ 30대 중반을 키워낸 주역이다. 이 때문에 나는 웹툰 플랫폼들이 마케팅을 잘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고, 문화콘텐츠는 단기간에 수확(?)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내가 사업을 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GL

흔히들 백합물과 혼동하기도 하는데, 우정과 사랑의 미묘한 클리셰를 다 허용하는 백합에 비해 조금 더 정신적인 의미의 '사랑'을 내포한 '여탕 콘텐츠'라면 다 GL로 불러도 무방하다. GLBT 중 가장 분포가 적은데, 그래도 대작 하나는 있다. 바로 '세일러문'이다. 애니메이션은 아동을 위하여 제작했기 때문에 원작과는 많이 달라서 그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물론 애니에도 GL요소는 군데군데 박혀있지만...). 어쨌든 '여탕'이라는 점에서 GL을 이해할 때 세일러문을 떠올리면 쉽다.



어째서 후조가 프로슈머인가?

초고에서 밝혔던 바와 같이 60년대부터 자발적으로 생겨난 집단, 그리고 자신들의 욕망을 스스로 창작하여 같은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거대한 상업으로 발전해왔다.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나는 콘텐츠의 미래는 개방과 공유에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플랫폼의 출현과 성장을 설명해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엘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 저서를 보면, 미래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프로슈머들이 주역이 될 것이라 한다. 인터넷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즐기기 시작했고, 유튜브라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만들어지자 아프리카 TV가 1인 크리에이터(방송인)를 키워내 결국은 MCN이라는 신규 사업을 불러냈다. 이제 더 이상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분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본이 콘텐츠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서브컬쳐 향유층의 저력이 뒷받침 되었고, 더 자세히는 오타쿠들의 수집벽과 후죠시들의 재창작 문화가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팬심 유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문화를 답습하며 성장한 한국 후조들의 배경에는 '클리셰'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한국 콘텐츠 기업들 중에서 이 클리셰를 찝어내어 상업에 녹여내고 있는 곳은 CJ E&M, 더 직격하자면 '응답하라 시리즈'와 미생 정도인데 향수와 공감이라는 대중적인 클리셰로 실험하는 양상을 띈다.

 

여기에 두 작품이 있다.

겨울왕국은 GL코드를 오해와 화해, 성장으로 풀어내어 디즈니가 건재함을 증명하였다. 또한 시대에 맞게 처음으로 리메이크를 허용하여 Let it go는 전세계에서 자체적인 로컬라이징을 통해 각 국가에 맞게 재채색되어 불리며 겨울왕국 2차 붐을 일으켰으며, 드라마 Once upon a time에서도 엘사가 현대로 와 겪는 이야기로 패러디를 해 3차 붐을 일으켰다. 단 한편의 영화로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콘텐츠가 된 것이다. 손 안대고 코풀기 잼

반면 어벤져스는 원작코믹스의 베이스를 기반으로 영화화 되었고, 어벤져스 속 인물들인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로 스핀오프 영화를 계속해서 제작하면서 다음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향유층을 잡아놓으려 안간힘을 쓴다. 물론 수익성 면에서는 어벤져스가 높지만, 하나의 콘텐츠를 놓고 지속한 힘을 볼 때 들인 리소스에 비해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겨울왕국이 단연 압승이라 할 것이다. 개방과 공유가 가지는 힘이다.


덕계는 이렇게 표현하면 된다.

남덕(덕후)은 디테일을 파고, 여덕(후조)은 빈틈을 판다.

그 훌륭한 예가 위의 두 작품인 것이다. 그리고 리소스 대비 효과는 지표가 반증한다. 그리고 여덕(후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법의 단어 '클리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마블이 한국에서의 로컬라이징을 시도함에 있어서 후조를 겨냥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크다.

헐리우드, 발리우드에 이어 충무로는 영화시장에서 3번째다 보니 마블은 한국에 원천콘텐츠로 진입하기 위해 사회현상의 하나인 '웹툰'을 선택했다(이 즈음 내내 정부부처에서 부르짖던 원소스-멀티유즈 어쩌구 때문에 초빙한건지 어쩐지 알 길은 없지만). 마블이 스토리를 검수하고, 한국 웹툰 작가 고영훈이 작화를 맡았고 다음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폭망했다.

웹툰의 주 소비층은 65% 이상이 여성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35%를 위해 이런 기획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65%를 우선 겨냥했다면 이 스토리의 기준은 헐크여야 했다고 생각한다. 출연의 비중이 아이언맨이 높든, 캡틴 아메리카가 높든 상관없다. 그저 스토리의 기준이 헐크이면 된다. 이것은 설명할 수 없지만 각 스타들의 내한 광경에서 엿볼 수 있는데, 로다주(아이언맨)의 경우는 기업관계자와 기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반면에 마크 러팔로(헐크)가 내한했을 때는 여성팬으로 공항이 마비될 정도였다. 바닥을 구르며 우는 것은 물론, 계속 꺅꺅대는 통해 공항인터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서 또 한번 CJ E&M을 언급하게 되는데, 이앤엠은 애초에 어벤져스 1을 개봉하면서 톰 히들스턴(로키;악역)을 초빙하여 SNL KOREA를 찍었다. 어벤져스에서 여덕 많기로 소문난 두 배우가 헐크와 로키이다. 클리셰가 콘텐츠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Facebook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전세계를 연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아직 전세계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인구가 전체의 30%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하여, 나머지 70% 인류에게 인터넷=페이스북이라는 개념의 선점이 가능하다는 것이 분석의 중론이다.

같은 예로, 지금까지의 콘텐츠 시장이 남성들이 소비하는 것을 주축으로 성장해 왔다면 그것은 전체 콘텐츠 시장의 30%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타쿠 시장을 있게 한 서브컬쳐 이벤트의 프로슈머는 아직까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은, 기업들은, 그녀들이 주축이 될 장(場)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

애초에 오타쿠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도 후죠시들이었고, 그러한 문화를 구축하고 향유하면서 자신들의 재능과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 서로가 서로의 애정을 유지시키는 자발적인 클러스터들이다. 나는 이 후조들이 활동할 거점을 제공하고, 그녀들이 세상으로 나올 때 세상과 연결하는, 그녀들의 완전한 이해자로서 미지의 70% 콘텐츠 시장의 길목을 지키고 싶다.


앞으로는 이 글에서 썼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 자본시장에서 후조로 어떻게 스타트업을 하려 하는지 쓰려고 한다. 스타트업은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자들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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