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30

임나일본부’ 존재 논쟁과 '전라도천년사' 갈등의 본질 –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30

– ‘임나일본부’ 존재 논쟁과 '전라도천년사' 갈등의 본질 –


한반도의 고대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이전, 남부 지역 에서 형성된 ‘삼한’(마한, 변한, 진한)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북방의 고조선, 부여, 옥저, 동예 등과 유사한 시기에 존재했으며, 부족연맹체 형태로 구성되어 점차 고대국가로 발전해갔다.


우리는 학창시절 '삼한'에 대해 비교적 간단하게 배웠다. '진한'은 신라로 발전했고, '마한'은 백제에 흡수되었으며, '변한'은 가야로 성장한 후 결국 신라에 통합 되었다는 정도였다. 여기에 삼한 농경방식이나 제례, 특산물 등에 몇 줄 덧붙인 것이 전부였고, 곧바로 '삼국시대'로 넘어갔다. 이는 삼한 관련 사료가 부족했던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 인류학,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 학문적 접근을 통해 삼한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전국 각지의 고고학 발굴은 새로운 물증을 제공하며, 삼한의 실체와 역사적 위상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학문적 논의를 넘어, 마한이 있던 지역인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관련 역사 복원에 나서고 있다.


대표사례가 바로 <전라도천년사> 논쟁이다.


2018년부터 광주시, 전라남도, 전라북도는 총 213명 집필진과 24억 원 예산을 투입해, 선사시대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도 지역 역사를 집대성하려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물인 <전라도천년사>는 편찬을 마쳤지만, 발간 직전에 ‘역사왜곡’ 논란이 제기되며 출간이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논란의 핵심은, 이 책의 고대사 서술이 ‘임나일본부설’을 암묵적 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재야 사학계 및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전북 남원지역 의 고대 가야지명을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문국’(己汶國) 으로 표기한 점이다. 이 명칭은 일본 고대사서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임나일본부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종종 인용되어 왔다.


비판 측은 <전라도천년사>에 이 명칭이 20차례 넘게 반복 사용된 것을 문제 삼으며, 이는 사실상 '임나일본부' 존재를 수용한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를 ‘식민사관에 기반한 역사 왜곡’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반면, 편찬위원 측은 이렇게 반박 한다. 1980년대 고속도로 공사 도중, 남원 일대에서 5~6세기 가야유물이 다량 출토되면서 이 지역에도 가야세력이 실존했음이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역사적 명칭을 고민한 끝에 '일본서기' 기록을 비판적으로 참고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려는 학문적 시도로서, 결코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역사학계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치권으로까지 확산 되었다.


2023년 12월, 국회 '문화체육 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장과 시민단체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 쟁점은 △단군조선 부정 여부 △'일본서기' 지명인용 타당성 △전라도 해안지역에 대한 왜의 지배설 등 민감한 사안들로 확대 되었다. 이 모든 논쟁의 중심에는 여전히‘임나일본부설’이 존재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이란 무엇인가?


<‘임나일본부’는 일본 고대사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명칭으로, 일본이 4~6세기 한반도 남부에 설치한 통치 기구라는 주장이다.>


일본 전통사학계는 이를 바탕 으로,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으며 그 거점이 바로 '임나일본부'였다고 주장 해왔다.


그러나 한국 사학계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다. '삼국사기' 등 한국정사에는 일본 지배 흔적이 존재하지 않으며, 임나일본부설은 일제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조작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이 논쟁은 '광개토대왕비문'의 ‘신묘년조’ 해석 문제로까지 확산된다.


비문의 문제 구절은 다음과 같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破, 百殘□□[新]羅, 以爲臣民.


일본 측은 이를 "신묘년(391년),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공격하여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하며, 일본 '진구황후' 한반도 정벌설과 함께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 측 학자들은 주어를 '왜'가 아닌 '고구려'로 해석한다. 즉, “신묘년에 왜가 침입했으나 고구려에 의해 격파되었고, 백제가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는 재일학자 '이진희' 가 이 비문 일부가 석회로 조작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해 큰 논란 일어났고, 이후 '이형구'는 ‘倭’ 자 자체가 조작되었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보다 중립적으로, “왜가 신묘년에 백제를 통해 신라를 공격하려 했다”는 해석도 등장하고 있다.


요컨대, 임나일본부설은 여전히 역사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논쟁적 이론이며, <일본제국주의 침략역사 정당화>를 위한 도구로 오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한국사회 에서는 극도로 민감한 주제이다.


<전라도천년사>의 ‘기문국’ 명칭 사용을 둘러싼 갈등은, 단지 고대 지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이 논쟁의 이면에는 역사 서술이 '사실'(fact)에 근거해야 하는가, 아니면 '민족정체성'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깔려 있다.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역사서술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반대 측 대응은 때로 과도한 감정적 반응 혹은 민족주의적 집착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국대 '심재훈' 교수는 자신의 SNS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20세기 후반의 한국사 연구는 민족사 미화와 확대 중심이었고, 그 결과가 국사교과서에 반영되어 대중 역사인식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민족주의 가 엷어진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 같은 유사역사학이 틀렸다고 아무리 설명 해도 대중에겐 잘 전달되지 않는다.”


사실 우리도 우리가 배운 역사 중 일부가 과장되었거나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준 열사의 헤이그 특사 사건과 사망 경위,


청산리 대첩 전과의 과장,


안중근 의사의 모친 편지 감동 일화 등은


민족영웅들의 이야기로 널리 퍼졌지만, 일부 내용은 실제와 차이가 있거나 각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역사는 상상력을 필요로 하고, 민족을 하나로 묶는 감정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서술은 '사실'(fact)이라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우리는 신채호가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정확한 출처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 의미는 분명하다. 과거의 잘못이든, 외세의 침략이든 비판적 성찰과 기억은 역사교육 핵심목적 중 하나다.


‘민족주의’는 사실 근대 이후에 형성된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다. 고대사회 사람들은 민족이라는 자의식을 갖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생존하며 문화와 생활을 공유한 집단 일원이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고대사를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하거나 정치화하는 것은, 오히려 역사 인식 왜곡과 정체 초래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국 역사를 타국에 의해 왜곡·조작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적 민족주의’ 역시 필요하다.


역사는 단순한사실 나열이 아닌, 사실 위에 상상력과 정체성을 더한 종합 예술이다. 그러나 그 모든 전제는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


‘마한’ 논쟁은 단지 고대사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 우리가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 지 그 인식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화두 이다.


이어서 삼국의 최전성기 편이 계속됩니다.


– 초롱박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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