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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Jul 11. 2021

오해

스마트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모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이 끊겨서 어쩔  없었다. 기다렸다가 버스를  수도 있었지만, 시간도 너무 늦었고 몸도 피곤했다. 택시를 타면 20분도  걸리는 거리이긴 하나 버스로는 40분은 족히 걸리므로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다. 스마트 폰의 택시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택시 호출 버튼을 눌렀다.


지나가는 택시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손을 드는 행위가 택시를 잡는 유일한 방법이던 시절이 있었다. 콜택시의 등장으로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전화 한 통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더 간편하게 앱을 이용하여 택시를 부른다. 앱에서 호출하면 가장 인근에 있는 택시가 나를 태우러 온다. 목적지를 미리 입력하고 택시를 부르니 기사님한테 위치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경로를 두고 입씨름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정말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며 택시에 올랐다. 차는 바로 출발했고 침묵이 흘렀다. 쾌적한 승차 경험을 위해 되도록 승객과 대화를 하지 말라는 택시 앱 회사의 지침 때문이리라. 나는 정적을 즐기며 SNS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뒤 고요함이 깨졌다. 기사님이 피곤함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지금 시간에는 영어로 안 해도 차 와요"

"네?"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짧은 거리도 다 가니까 영어로 안 해도 된다고요. 영어로 찍어도 어디 가는지 어차피 우리가 다 알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우리가 아무리 무식해도 목적지 정도는 영어로 된 것도 읽을 수 있어요"


무슨 얘기인지 어리둥절해진 나는 택시 앱을 들여다보았다. 목적지가 영어로 적혀있었다. 아이폰 기본 언어를 영어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매우 당연했다.


"혹시 제가 목적지를 영어로 입력하면 기사님한테도 영어로 보이나요?"

"네. 그래도 우리가 다 읽을 수 있어요. 굳이 그렇게 안 하셔도 돼요."

"아, 그런 게 아닌데. 저는 원래 전화기를 영어로 설정해 놓아서 모든 앱이 다 영어로 보여요. 제가 영어로 입력하면 기사님한테도 영어로 보이는 줄은 몰랐네요."

"짧은 거리 갈 때 기사들이 승차 거부할까 봐 일부러 영어로 입력하는 손님들이 있어요. 기사들이 못 읽을 거라 생각하고."


기사님은 내내 언짢아하셨고 나는 그게 아님을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2G 폰을 쓸 때부터 전화기의 기본 언어를 영어로 설정해서 사용해 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그게 편했고, 버릇처럼 계속 그렇게 사용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람이 전화기 언어를 왜 영어로 설정해 놓았는지부터 설명이 어려웠다. 누가 봐도 기사님이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의 변명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기사님이 언짢아하실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좀 억울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더 갑갑했다.


살다 보면 오해를 받기도 하고 하기도 한다. 어떤 오해는 간단한 설명으로 해소가 되지만,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가 믿지 않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에 그렇다. 상대가 나를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리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오해를 줄일 길이 없다. 반대로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관계에서는 적당한 설명만으로 오해를 풀 수도 있다. 굳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아니어도 그간에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내 말을 믿어주니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이에서는 이치에 맞는 설명이 필요하다. 논리적인 설명이 아니고서는 오해를 없애기가 쉽지 않다. 기사님과 나는 관계가 전혀 없던 사이일 뿐 아니라 그 간의 경험으로 목적지를 영어로 입력하는 손님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전화기 언어를 영어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그리 논리적으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오해를 풀기에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택시 앱에서 따로 언어 설정을 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한국어로 바꾸었다. 다음번에 이용할 때는 기사님이 오해하지 않도록.




*cover image by Janis Rozenfelds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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