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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Nov 14. 2019

영웅을 파멸시키는 방법,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공연을 담은 리뷰] #9

한참을 망설였던 공연입니다. 취소했다가 다시 예매하기를 두 번이나 하고야 봤어요. 전날 관람한 같은 작곡가가 만든 <나부코(Nabucco)>의 감흥이 이미 가슴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루 정도는 영화나 공연 관람 없이 쉬고 싶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집에서도 어차피 엔터테인먼트를 찾아 보지 않겠는가 싶어 결국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잠시만요!]

https://classicmanager.com/playlist/114770 

(위 혹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클래식 매니저'에서 <오텔로> 주요곡 Play List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바로 연결이 될텐데, 우측 하단 '박스 화살표'를 클릭하시고 웹브라우저로 실행 혹은 상단에서 '클래식매니저 전용앱'으로 실행하면 음악을 들으며 리뷰를 읽을 수 있습니다.)





16년 만의 화려한 복귀, <오텔로>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이었던 베르디는 인간 심리를 깊이 보여주는 작품에 감탄했어요. 1847년 애국심을 고취시키던 <나부코>와 같은 초기작들에서 탈피, 원숙기를 열어준 <맥베스(Mecbeth)>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중기 3대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리골레토(1851)>, <일 트로바토레(1853)>, <라 트라비아타(1853)>를 발표하죠. <아이다>를 마지막 작품으로 여겼는지 오래도록 그의 오페라를 볼 수 없었습니다.


대본작가이자 친구인 아리고 보이토는 유유자적하던 베르디를 끈질긴 설득 끝에 기어코 무대로 불러오죠.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Othello)>를 기반으로 만든 <오텔로(Otello)>('오셀로'의 이탈리아어 이름)가 복귀작입니다. 1871년에 초연한 <아이다(Aida)> 이후 무려 16년 만이죠. 작품 활동을 쉬던 시기 영향을 미친 이는 당시 유럽을 휘어잡은 같은 나이의 바그너입니다.


종합예술을 추구하여 음악과 극을 따로 분리하지 않는 그의 음악극은 오페라에서 음악 뿐 아니라 극 자체를 중시했던 베르디에게 많은 자극을 안겼을 겁니다. 서곡없이 웅장한 합창으로 시작하는 <오텔로>도 그런 영향이 아닐까 싶네요. 전날 봤던 <나부코>는 따로 들어도 낯설지 않은 아리아와 합창이 많았습니다. 그에 반해 <오텔로>는 극의 흐름과 일치하며 감흥을 불러 일으켰어요.





강렬한 시작, 단번에 휩싸이다


시작부터 강렬한 화음과 함께 시선까지 무대에 못박혔습니다. 오텔로가 전투에서 귀향하는 바다를 표현한 곡은 그의 모험과 기다리는 주민들의 조마조마한 마음, 한 순간 들어나는 이아고의 내심이 어우러져 웅장하고 긴장감 넘치게 묘사됐습니다. 더하여 천사로 분한 여성 무용수가 파도를 형상화한 투명하고 얇은 막의 일렁임과 합창단 사이에서 파도에 배가 흔들리는 모습은 환상적이었어요.


그 긴장된 음악 사이, 바다의 전장에서 승리한 오텔로가 귀향하고, 이아고의 음흉한 계략에 의해 짤리는 카시오의 소란이 벌어집니다. 직후 극 전체를 통털어 가장 감미로운 오텔로와 데스데모나의 이중창 '밤의 정적 속으로 소란은 사라지고(Gia nella notte densa)'가 흘러요. 이 둘의 달콤한 침실을 비추는 거울과 함께 연출하여 입체적이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영롱한 밤하늘을 만들어줍니다.


오텔로를 연기한 호세쿠라(Jose Cura, Tenor)는 영웅의 품격이라고 할까요? 첫 등장부터 위풍당당합니다. 하지만, 술 취해 난동부린 카시오의 직위를 날려버리고, 이아고를 믿는 모습은 지혜롭지 않아 보였죠. 흑인이지만 능력 하나만으로 장군이라는 위대한 호칭을 얻기까지 얼마나 부침이 많았을까요. 이아고는 단지 그의 열등감과 질투를 부추겼을 뿐입니다. 유리같은 내면을 보여주는 테너 호세쿠라의 연기가 대단했어요.





무대 연출, 오텔로의 속마음


2막의 무대 연출은 객석 정면에 보이는 단을 백지와 같은 하얀색 벽으로 두었습니다. 우측하단엔 순수한 사랑에 균열이 생기 듯 검은 문으로 이아고의 음흉한 계략이 지나다니죠. 카시오에게 '복권을 데스데모나에게 부탁하라'고 조언하고 오텔로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며 의심을 부추깁니다. 오텔로에게 질투라는 뿌리가 심어지자 벽이 쓰러지고 온통 어두운 가운데 빛의 문 하나가 보이는 반전 무대가 그의 마음을 대변하죠.


악당도 이런 악인이 없을 겁니다. 음흉하고 교활한데 카리스마까지 갖춘 이아고 역엔 바리톤 카를로스 알바레즈(Carlos Alvarez)가 열연했습니다. 그의 진면목은 '나는 악의 신을 믿는다(Credo in un dio crudel)' 라는 아리아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작가 아거사 크리스티는 이아고를 촉매와 같은 작용을 하는 인간으로 얘기했다고 합니다. 주변 인간을 모두 변화시키지만 정작 자신은 그대로 남아있죠.


3막에선 급기야 오텔로의 자아를 보여주는 천사가 불타며,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의 내연관계를 확신하며 종말로 치닫습니다. 1막의 아름다운 아리아는 4막에서 죽음을 직감한 데스데모나의 애절한 노래와 오텔로의 비명과 같은 탄식으로 바뀌죠. 별빛이 수놓았던 침실은 나이트가운만 걸려있어 황량합니다. 암흑같은 문에서 어떤 불청객이 들어올지 알 수 없는 불안을 현악기들의 음침한 연주로 증폭시킵니다.





비극, 그리고 질투


남들의 시선도 아랑곳않는 데스데모나의 눈치없음은 답답했어요. 일편단심의 양극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질투로 눈이 뒤집혀진 오텔로의 마음은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을 듯 했는데 말이죠. 죽음을 직감한 그녀는 시녀가 불렀다는 '버들의 노래(Piangea cantando)'와 '아베 마리아(Ave maria)' 로 연민을 불러 일으킵니다.


소프라노 도로테아 뢰슈만(Dorothea Roschmann)은 생김새부터 고결한 데스데모나와 잘 어울렸습니다. 음색 역시 고우며 높고 약하게 떨리지만 때론 확신에 찬 강한 음성마저 보유한 듯 했어요. 불현듯 그 어두운 문을 통해 오텔로가 들어옵니다. 이중창 'Chi è là?... Otello?' 에서 1막에서 들었던 감미로운 멜로디가 나오는가 싶더니, 불안과 긴장을 일으키는 독특한 리듬의 현악이 심하게 울리죠.


이 마지막 장면은 시종일관 긴장케 합니다. 한시도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어요. 이아고의 모든 계략을 알고 나서 무너지는 그때 '내가 칼을 들었다고 두려워하지 마오(Nium mitema)' 아리아는 질투에 눈멀고 허망한 자만심에 휩싸여 데스데모나에게 내렸던 단죄가 비수가 되어 본인 스스로에게 돌아옵니다. 막이 내리고도 오텔로의 마지막 허망한 눈빛이 떠올라 쉬이 자리를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커튼콜까지 보고도 호세쿠라가 연기한 오텔로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상황은 다를지라도 인간의 불완전한 모습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가르침이 베르디의 음악과 함께 가슴에 감명으로 쓰여졌어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를 베르디가 다시 만든 <오텔로>, 명배우들과 틸레만의 지휘, 그리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가 받쳐줍니다.






[관람 정보]

- 관람일 : 2017년 5월 3일(수), 17일(수) 2회 관람

- 상영 일정 : 2017년 4월 16일 ~ 5월 24일 / 수 19:00 (센트럴, 하남 스타필드 14:00), 일 14:00 상영
- 상영 지점 : 코엑스, 센트럴, 목동, 킨텍스, 분당, 하남 스타필드, 광주, 대구
- 러닝 타임 : 154분 *인터미션 없음


[시놉시스]

데스데모나를 아내로 얻은 오텔로 장군은 카시오를 부관으로 임명한다. 소위 이아고는 라이벌 카시오가 자신을 제치고 승진하자 오텔로에게 복수를 다짐하여 음모를 계획한다. 그는 오텔로에게 아내 데스데모나가 카시오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큰 배신감을 느낀 오텔로는 아내에게 외도를 실토하라고 요구한다. 데스데모나는 그녀의 결백을 납득시키려 하지만 오텔로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작품소개]

2016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오텔로>는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21세기 최고의 오텔로라 꼽히는 호세 쿠라가 비극적 영웅으로 분해 풍부한 색깔의 목소리로 깨질 것 같은 유약함부터 불 같은 열정까지 모두 담아 위대한 오텔로를 재탄생시켰다. 데스데모나 역을 맡은 도로테아 뢰슈만은 그녀만의 극적인 서정성과 청아함으로 넋을 잃게 만든다. 지휘를 맡은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베르디식 비극의 전형을 바그너식 악극(Musikdrama)으로 재창조했다. 틸레만과 그가 이끄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열정적이지만 치밀하게 짜인 뉘앙스로 베르디의 비극을 현대적으로 탄생시켰다. 연출가 부사르는 영상과 무대, 조명 디자인을 통합시키는 영리한 무대 연출을 선보인다. 오텔로 속에 그려진 과거와 현대의 갈등을 2D와 3D 사이의 갈등으로 치환하여 보여준다.


[작품정보]

Conductor 크리스티안 틸레만 Christian Thielemann
Orchestra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Staatskapelle Dresden
Production 뱅상 부사르 Vincent Boussard

Otello: 호세 쿠라 Jose Cura
Desdemona: 도로테아 뢰슈만 Dorothea Roschmann
Iago: 카를로스 알바레스 Carlos Alvarez
Cassio: 벤자민 베르넹 Benjamin Bernheim
Emilia: 크리스타 마이어 Christa Mayer
Lodovico: 게오르그 체펜펠트 Georg Zeppenfeld
Roderigo: 브로 마그누스 퇴데네스 Bror Magnus Tødenes
Montano: 처버 세게디 Csaba Szegedi
A Herald: 고든 빈트너 Gordon Bintner
An Angel : 소피아 핀추 Sofia Pintzou


[주요 아리아]

-오텔로와 데스데모나 사랑의 2중창 '밤의 정적 속으로 소란은 사라지고'
-이아고의 아리아 '나는 악의 신을 믿는다'
-오텔로와 이아고 복수의 2중창 '대리석 같은 하늘에 맹세한다'
-오텔로의 모놀로그 '신이여, 당신은 이 모든 치욕을 내게 안겨주나이까?'



매거진의 이전글 클럽을 무대로, 국립현대무용단 <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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