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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Dec 30. 2019

철렁했던 응급실의 하루

[마음을 담은 편지] #21

어머님께서 거동을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요양보호사에게 응급실로 모셔달라고 부탁했어요. 회사에서 급히 병원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도착한 응급실은 보호자 대기실이 따로 있었어요. TV 같은 모니터에 환자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안내됐죠. 어머님은 아직 '검사중'이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응급의가 불렀어요. 피검사와 엑스레이 사진, 그리고 자신이 환자 상태를 살펴본 결과 뚜렷한 병은 없고 기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진단이었습니다. '휴...', 별의별 생각이 들었는데 안심됐어요. 부탁하여 수액과 영양주사를 맞히는 동안 대기실에 나와 다음 주에 갈 늦은 여름 휴가 계획을 짰습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집에 가려 어머니를 침상에서 일으켰는데, 몸을 어쩌지 못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상했습니다. 내가 조금만 힘을 빼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다시 쓰러졌습니다. 안심했던 마음도 잠시,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뭔가 잘못됐어요. 다시 눕히고 얼른 담당의부터 찾았습니다.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힘을 못쓰는 걸 보이자, 뇌CT와 MRI 검사를 추가로 했어요. 두어 시간 넘게 기다리는데 결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애가 탔습니다. CT 결과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죠. MRI는 판독하는데 또 한참 걸리더군요. 점심 시간에 도착해 벌써 저녁이 다됐습니다.


응급의는 MRI 결과에서도 특별한 걸 찾을 수가 없어 다음날 외래진료를 추천했어요. 집에 갔다 다시 병원에 오라는 말인데, 환자 상태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있다가 진찰 받기를 요청했으나, 병명 없이 입원할 수는 없었어요. 그렇다면 응급실에서 밤새고 외래진료를 보겠다고 버텼습니다.


응급실에서 요청했는지 잠시 후 담당 의사가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신경과 전문의였어요.) 그는 MRI 결과 상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다시 검사해도 되겠냐며 동의를 구했습니다. (참고로, 2018년 10월 전까진 MRI 검사 후 병이 나오면 보험이 적용되고, 그렇지 않으면 환자 부담이었습니다. 현재는 상관없이 보험 대상입니다.)


저녁을 지나 어두워지니 의사가 불렀어요. 모니터에 MRI 결과로 보이는 사진이 보였습니다. 뇌 같았는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니 알 수 없는 사진으로 변했어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가 혈관인데, 혈전이 막고 있습니다.' 잠시 멍했어요. 


이번에도 별 거 없길 기대했던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네? 혈관이 막혔다고요?', '뇌경색입니다' 응급실의 시끄러운 소음도 잠시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뇌경색이요?', 의사는 빨리 알아먹으라는 듯 다시 말했습니다. '네, 중풍입니다.'


무서웠어요. '뇌경색'이라는 양의학적 병명보다 '중풍'이라는 한의학적 말에 두려웠습니다. 병원에 있지만 서도 뭔가 빨리 해야 될 거 같아 급해졌고 당황스러웠어요. 의사가 그걸 느꼈는지 환자가 늦은 상태 아니니 수술할 필요는 없고, 병실로 옮겨 약물 치료하며 관찰하자고 차분히 설명해줬습니다.


입원 수속부터 했어요. 입원 환자 병동은 면회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출입문을 통제했습니다. 키가 되는 보호자용 목걸이 명찰을 줬어요. '뇌졸중 집중 치료실' 로 옮긴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나도 진이 빠졌는데, 움직이지 못하는 몸에 놀라고, 수시로 피뽑고, 낯선 동굴같은 곳에서 받은 검사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어머니의 한쪽 얼굴에서 그 피로함이 느껴졌어요.


쉼 없이 병실 간호사는 환자 상태를 체크했습니다. 이름, 나이, 여기가 어딘지, 어눌해진 말소리에 아랑곳없이 제대로 답할 때까지 재촉하고 또 물어보기를 반복했죠. 왼쪽과 오른쪽 팔과 다리 상태를 확인했는데 마비가 온 왼쪽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얼굴 부위를 짚으라고 시킬 땐, 어머니도 성질이 났는지 짜증을 내더군요. 하지만, 간호사는 좀 더 날카롭게 채근하고 때론 다독이며 모두 할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같은 병실의 다른 뇌졸중 환자 3명도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 체크했어요. 옆에서 봤을 뿐인데 한바탕 전투를 치른 느낌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병실의 불은 꺼졌습니다. 어느새 자정을 넘겼어요. 어머니 병상 옆에 보호자용 간이 침대를 꺼내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마음은 더욱 어지러웠습니다.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어요. 선잠이 들어도 모니터에서 울리는 경고음, 환자의 신음소리, 주기적으로 상태를 체크하는 간호사와 간병사들로 깼습니다. 새벽녘 병실을 나왔어요. 적막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보이지 않는 내일처럼 어둡기 그지없더군요. 목에 걸린 '보호자' 출입카드가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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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왕마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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