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러스 트레이터 이한수 interview
포켓몬 GO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닌텐도의 시작이 ‘화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시작을 잊지 않으려 아직까지 디자인 화투를 생산한다고 한다. 놀이와 디자인이 절묘하게 결합된 화투, 53장의 카드 패에 담긴 이야기가 다채롭다. 그래서인지 종종 디자이너들과 예술가들이 화투 패를 자신의 영감을 풀어놓는 캔버스로 활용하곤 한다. 오십 장이 넘는 부산을 직접 그려낸 이한수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났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주로 출판 일러스트를 하다 보니 종이 매체와 가까웠던 게 사실이다. 불만은 없었지만 그림이 쓰일 수 있는 조금 새로운 굿즈를 만들고 싶었다. 수첩이나 액세서리 등도 좋지만 조금 더 기발하고 키치 한 것이 없을까 한동안 고민만 해오다가 부산 해운대의 ‘에코에코 바다상점’과 연결이 되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20대 때 진보신당이 있었는데 간간이 특보에 만평이나 디자인 작업을 해오곤 했었다. 그러다 진보신당에서 노동당이 갈라져 나오고 그곳에 계신 친한 당직자 한 분의 개인적인 주선으로 해운대 바다 상점과 연이 닿게 되었다.
화투라는 것이 해학적이기도 하고 뭐랄까... 민중적이기도 하고.. 자칫하면 상스러운 오락이라고 손가락질받기도 하지만 또 이상하게 매력적이고. 제의가 들어오니깐 타짜 대사 같은 것도 하나하나 생각나면서, 머릿속에 그림도 그려지고. 기획단계부터 뭔가 두근두근하더라. 그게 시작이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글쎄, 아주 처음은 아닌 거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 미술시간에 달력을 만들라고 해서 달력 그림으로 화투를 그렸었는데 선생님한테 머리통을 맞았다. 어린 게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느냐고. 화투가 친근할 수밖에 없었던 게 집에서 외할머니와 민화투 치기도 하고 낮잠 자다가 일어나면 할머니가 화투점 떼던 모포를 반 정도 덮고 있던 게 기억난다. 그러면 내가 잠투정하는 통에 화투 패는 다 어질러져 있고. 화투를 가지고 놀아도 부모님이 별 말을 안 하셨던 거 같다.
조영남보단 김점선 화백의 화투 그림이 굉장히 인상 깊어서 나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마침 부산과 연락이 닿은 것이다. 내가 주로 쓰는 재료인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조금 더 손작업 느낌이 나는 화투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실용성 때문에 결국 디지털 작업을 택했다. 이게 기념품이다 보니 물성에 약간 변형을 주고 싶어서 예전 사극에서 고증되었던 종이 화투를 만들어보려고도 했는데 역시 아무래도 약하니깐...
나도 부산인 게 신기하다. 내가 부산을 참 좋아한다. 그게 참 이상한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왜 전혜린 ‘먼 곳에의 그리움’ 같은 수필 있잖은가. 가본 적도 없는데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그런 거 같다. 나는 부모님까지 서울 토박이여서 살면서 바다를 보거나 다른 지방에 가본 일이 드물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회과부도를 줬는데 그 당시에 올 컬러 교과서는 미술책 하고 사회과부도여서 괜히 그 두 개를 자주 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보니깐 한국에서 서울과 가장 먼 곳은 부산이구나, 완전히 반대구나 하는 걸 알게 됐고 그냥 괜히 그 페이지를 접어놓고 심심할 때 펼쳐보곤 했다. 그런 곳이 하나 더 있었는데, 아르헨티나다. 남미 지도를 보는데 아르헨티나 남동쪽 바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진 않다) 한반도 지도가 거꾸로 그려져 있어서 물어봤더니 지구를 뚫고 가면 아르헨티나가 나온다고 하더라. 역시 부산하고 같은 의미. 먼 곳에의 그리움, 하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그 말자체에 매혹됐던 것 같다. 부산, 아르헨티나.
실제로 26살 때 졸업하고 취직했는데, 금방 그만두고 방구석에서 놀다가, 어느 날 새벽에 그냥 배낭 꾸려서 기차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동의대 앞 고시원에 방을 얻어서 한 달 동안 지냈다. 창문도 없고 그런 방이었는데, 그 방에 있기 싫어서 괜히 혼자 부산 곳곳을 걸어 다녔다. 새벽 서너 시에 용두산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결국 한 달 동안 열심히 걸어 다니고 밤이면 술 먹고 하면서 지내다가 다시 새벽차를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악성 중2병이 좀 끝났던 것 같다, 하하. 그 이후로는 다시 취직해서 일하다가 몇 년 후에 프리랜서가 됐고 지금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이번에 화투 특별판 제작이니 이번 기회에 한번 가보련다.
맞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53장이지만, 사실은 거의 한 달 동안 300장 이상 그렸던 거 같다. 말했듯이 디지털 작업을 뺀 손작업 느낌으로 하고 싶었는데 맞지 않아서 모두 갈아엎었고, 디지털 작업으로 다시 시작하다 보니 또 힘들고(태블릿에 그리는 것이 그냥 종이에 그리는 것보다 손이나 어깨 등 물리적인 힘이 더 든다.. 내 경우지만). 정말 손가락 끊어지는 줄 알았다(웃음). 사실 뒤로 가면서 체력적으로 한계가 와서 그림에서 힘이 떨어지는 게 보인다.
부산 풍경은 머릿속에 선연히 남아있어서 많이 힘들진 않았다. 좋아하는 것들하고 유명한 것들만 추려도 대충 완성되더라. 주관적인 기억에 많이 의존했다. 예전에 부산에서 지낼 때, 자갈치 시장에서 다른 마을을 갈 때 배로 가는 걸 봤었다. 마을버스가 배인 거다. 그런 게 너무 신기해서 내가 느꼈던 매력을 그려보려고 했다. 정말 부산은 다른 나라 같다. 말 통하는 다른 나라.
말 통하는 다른 나라, 부산
나는 야구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진 않는데, 이상하게 항상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다. 전생에 훌리건이었을 거 같은 사람들. 일단 가족이 모두 엄청난 야구광이다. 특히 엄마, 그리고 지금 같이 지내고 있는 선배도 엄청나다. 좋아하는 팀도 딱히 없이 허구연 아저씨처럼 그냥 모든 팀 모든 경기를 다 보고 분석한다. 엄마는 김재박 선수 팬이었는데, 나는 최동원 선수 팬이다. 화투 그림 시작하기 한 달 전인가, 심심풀이로 최동원 선수를 그렸는데, 그거 보고 어떤 사회인 구단에서 로고를 의뢰하더라. 그리고 부산 화투에도 같은 그림이 쓰였고. 뭔가 시기가 딱딱 맞아떨어진 게 최동원 선수 그림 한 장 때문인 거 같아서 애착이 간다. 선동렬이 약간 “완벽, 기계적인”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반해 최동원 선수는 “열정, 허슬 링”같은 딘어들이 떠오른다. 사연 있어 보이지 않나. 그게 좋다.
2월 (매조)에 조용필을 넣었는데 못 찾겠다 꾀꼬리 하고 맞을 것 같아서였다. 조용필이 원래 부산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경기 화성 출생인데 클럽 밴드로 활동하다가 부산까지 내려가게 됐는데 거기서 가능성을 알아본 지방 공중파 피디 한 분의 의뢰로 만든 노래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더라. 그게 히트하면서 역으로 서울로 진출하게 된 거고. 이런 사연도 재밌었다. 원래 다른 패에도 부산 출신인 설운도 현철이 들어가 있었는데, 조용필을 이길 순 없더라. 결국 조용필로 통일됐다. 1차 제작 때인가, 조용필 팬클럽에서 화투를 대량 주문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땐 정말 신기하더라. 나는 ‘꿈’하고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가 좋다.
부산은 워낙 랜드마크나 아이콘이 많은 도시라 나중에는 많이 걸러내야 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몇 곳 없으니 아쉽기도 하고... 제주도, 부산, 서울 정도인 것 같다.
벚꽃과 이순신 패. 이 부분을 걱정했었다. 이순신 장군과 벚꽃이 함께 나오면 오해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지금 일본에 있는 벚꽃이 학계의 정식 명칭이 '조선 벚꽃'이고 실제로 용두산 공원에도 벚꽃이 많이 피고 있다고 했다. 그냥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신경 쓰여서 벚꽃 앞에 이순신 장군을 그렸다. 벚꽃보다 뒤에 있지 않다.(하하)
친구 둘 하고 같이 쳤었다. 그 둘은 잘 치는데.. 내가 헷갈리더라. 그냥 기념품으로 소장하셨으면 좋겠다.
부산을 안 했으면 도시를 할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서울도 해보고 싶은데, 내가 서울 사람이라 그런지 조금 뻔한 느낌이 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평양 화투가 조금 욕심이 난다. 평양을 포함한 북한에 대한 화투를 만드는 건 재미있을 것 같다.
요즘 한식 대첩을 봐도 북한 대표 분들이 나오시는 걸 봤다. 문화콘텐츠를 다루는 것에는 따로 경계가 없었으면 한다. 이산가족인 조부모님이 있으셔서 정서적으로도 가까운 것 같다. 생활이나 모습이나 이런 것들이 궁금하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책을 좀 인상 깊게 봤다. 뭘 먹고 있을까.. 프랑스, 동남아 여행하듯이 정치나 사상보단 어떤 풍경일까, 뭘 먹고살고 있을까.. 생활, 문화 전반이 궁금한 게 있다. THE PAUL이라는 영화를 보면, 십자군이 싸우는데 뒤에 타지마할이 나오고 MIX 되어있는 판타지가 나온다. 그런 그림이 마음에 든다.
화투는 사실 일본 건데, 우리한테 더 친숙한 놀이가 됐지 않느냐. 저는 전통도 변모하고 진보하면서 발전한다고 생각을 한다. 좋게 바뀌어가는 과정 자체에 그대로 그걸 지킬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문화나 문화재를 바라보는 게,, 너무 한 가지 시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무렴 우리 것만 지키면서 스스로 경계선을 쳐두거나 성역화하는 게 좋은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레이블(Two Weiss)로 그림책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 31살에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꼬박 사오 년은 굶을 걱정을 했는데, 여차여차 아등바등하면서 와보니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있더라. 회사 나올 때 목표처럼 계속해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고등학교 동창인 도예가 친구와 올 초에 다녀온 파리를 일러스트 북으로 내려고 작업 중이다. 특별한 건 없고 싫고 좋고 짜증 나고 눈물 나고 그랬던 일상, 뭐 그다지 감상적이거나 아름다운 여행책은 아닐 테고 그냥 솔직한 책이 될 거 같다. 여행 경험을 우리 그림체로 풀고 있는 중이다. 남자 둘이 작업하다 보니 그림체가 좀 귀여운 맛이 없어서 걱정이긴 한데.. 어떻게 브로맨스라도 좀 욱여넣어서 꾸며보려고 하하.
단지 즐겁게 계속하고 싶다. 얼마나 많이 자주 안 즐겁다고 생각하면서 사나. 그런데 모든 사태나 일들은 현상일 뿐일 때가 많고 즐겁다, 불행하다의 제목을 붙이는 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더라. 제목대로 된다고 하지 않나. 기왕이면 즐거운 제목이었으면 좋겠다. 프리랜서 생활은 생각보다 그렇게 쿨하진 않다. 일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해야 하고 한번 못하면 그쪽에선 영원히 아웃이다. 정말 죽도록 그리기 싫은 그림도 밤새워 허벅지 찔러가며 그려야 할 때도 부지기수다. 한 달에 일 다섯 개를 하면 수능을 다섯 번 치는 기분이다. 24시간을 혼자서 운영해야 하니깐 그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더라. 그래도 즐거운 거 보면, 제목을 잘 짓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웃음).
사람들에게 바라는 건, 예술이나 문화콘텐츠 제작자를 과도한 시선으로 보아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불편하고 어쩔 줄 모르겠다. 요즘은 너무 예술에 관한 의식이 과열된 것 같아서... 그림을 그리고 콘텐츠를 제작하여 세상에 내보내고 하는 일들도 단지 하나의 직업이고 일이다. 일차적으로 노동이고 밥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다.
생활을 위해 하는 것이고. 영감 같은 걸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필휘지나 하룻밤의 광기로 후다닥 같은 건... 글쎄.. 난 그 타입은 아닌 거 같다. 열심히 걸어가서 보고 듣고 아이폰으로 열심히 찍고 오는 길에 생각하고 집에 와서 핀업해서 정리해놓고 그러다가 어느 날 밥 먹으면서 심심하면 한번 더 보고, 그렇게 차근차근 아이디어 같은 걸 정리하다 보면 프로젝트 윤곽이 나온다. 감이나 촉 같은 건 그런 걸 수도 없이 거치고 나서야 생기는 것 같다. 어느 분야나 베테랑이 되기 위해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고 어떤 분들은 말해주시는데, 내 동생은 지금 물리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데, 나는 그게 더 아름다운 일 같다. 숫자를 가르치고, 체계를 만들고, 합리적이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거 같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 같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름답다기보단 그냥 단지 좀 귀엽고 즐거운 짓거리인 거 같다. 그래서 화투도 만든 거고 하하. 이게 내가 세상에 내 즐거움을 환원하는 방식인 거 같다.
이게 내가 세상에 내 즐거움을 환원하는 방식인 거 같다
**부산 화투는 현재 크라우드펀딩을 받고 있으며, 후원을 통해 화투와 이한수 작가의 굿즈 구매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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