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미술 시장 울은 아시아 허브,,,美술관 나들이 味각이 머무는 곳은
2006년 미국 팝 아트 거장 앤디 워홀과 관련해 컬렉터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 해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워홀의 ‘오렌지 마릴린’(1962作)이 무려 1,600만 달러에 낙찰된 때다.
이 그림은 레온 크러샤란 개인이 1964년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1,800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40여년 만에 8,900배 오른 경이적인 가격의 미술품이 됐다. 크러샤의 “이 그림은 IBM 주식과 같은 겁니다. 지금이 살 때예요!”라는 외침이 현실이 된 셈이다. 1950년대 태동한 팝 아트가 뜰 것이라곤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던 때, 크러샤의 안목은 한 번쯤 되짚어 볼 부분이다.
2006년 해외 시장은 크리스티 경매가 하루에 5억 달러 가까운 최고 매출을 기록하는 등 이미 한껏 달아오른 상황이었다. 우리 미술시장도 달아오를 때였다. 연말 한 경매에서 박수근의 ‘노상’이 10억4,000만원이라는, 근현대 국내 작가 미술 작품으로는 최고가로 거래가 성사됐다.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미술 시장이 호황을 맞았다. 2006년 전경련이 뽑은 연말 결산 경제 톱뉴스는 ‘부동산 시장 불안’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미술 시장 성황도 요동치는 부동산 정책에 직결돼 있다.
지난해 국내 미술 시장은 1조원을 돌파했다. 해외 언론에서는 지금까지 홍콩이 아시아 미술 시장을 선도했지만 서울이 ‘아시아 허브’로 발돋움 할 것으로 전망하는 기사는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다. 국내 가장 큰 미술 시장인 ‘키아프 서울’은 매해 성공적으로 기록을 갱신하고 있고 영국 프리즈(FRIEZE)와 손을 잡고 세를 불리고 있다. 국내외 메가 갤러리들이 총출동하는 거대 시장이다.
세계 유수 갤러리들은 그동안 홍콩에 기반을 뒀지만 중국 반환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는 점을 우려해 발을 빼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거래세가 없는 서울을 매력적인 대안 시장으로 보고 앞 다투어 진출하고 있다.
세금, 배송, 정치적 문제 등 미술품 거래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서울은 기사처럼 ‘가능성’이 아닌 필연성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전망은 키아프 서울에서 확인됐고 우리 미술 시장은 이를 발판 삼아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
자! 아시아 허브로 급성장한 우리나라 미술시장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젠 작품들이 몰려있는 갤러리 탐방과 ‘금강산도 식후경’ 갤러리 옆 맛집을 찾아보자.
전통적으로 갤러리는 부촌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경제 논리에 따라 구매력 있는 자산가들이 사는 동네로 자연스럽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갤러리 중심의 미술 시장 시초는 인사동이다.
70년대부터 화랑과 갤러리가 들어섰고 지금은 부촌의 재편에 따라 초기 지형과 많이 달라졌다. 현대화랑, 학고재 등 굵직한 화랑이 빠져나간 인사동에는 인사아트센터, 인사아트플라자 등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사동에는 ‘山村’(산촌)이란 갤러리 겸 식당이 있다. 사찰 음식을 표방하지만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를 줬다. 산나물을 이용한 각종 나물무침과 묵나물, 부각, 조림 등 다양한 찬이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식당과 갤러리가 한 곳에 있는 경우가 드문데, 산촌은 그런 면에서 독특한 곳이다. 꽤 넓은 한옥채에 있는 곳이라 제법 운치도 있다.
사찰 음식을 표방하지만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를 줬다. 메뉴가 정식 하나뿐이다. 정식은 전식, 물김치, 죽, 산채 모둠나물, 김치, 겉절이, 고사리, 도라지, 튀각, 두부, 묵. 감자, 더덕무침, 산채잡채, 튀김류, 고소나물, 전류, 밥, 찌개, 차, 유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승려 출신 김연식 대표가 산사에서 익힌 사찰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채식 위주 식단으로 메뉴를 만들었다.
‘산촌’은 비건들이 한 번쯤 가볼 만한 성지다. 화학 첨가물은 사용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향미로 맛을 낸다. 운 좋은 날은 김 대표의 피아노도 감상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전도 다수 개최한 화가이자 문인이기도 하다. 수필가이자 화가였던 천경자 화백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기자가 2000년대 초반 뉴스통신사 뉴시스에서 근무할 때 사무실이 운현궁 건너편 경운빌딩이었다. 당시 가벼운 주머니의 기자들이 자주 찾았던 식당이 종로 3가 익선동 초입에 있는 ‘종로할머니국수’와 ‘찬양집’이다. 불과 10미터 떨어진 두 곳 모두 칼국수 전문점이지만 ‘종로할머니국수’는 멸치로 육수를 내고 ‘찬양집’은 홍합·바지락 등 해물을 우린 육수를 쓴다.
당시 가난한 기자의 가벼운 주머니 탓에 한 끼 3,000원에 사리까지 넉넉하게 주는 ‘종로할머니국수’를 자주 다녔다. 그때 각인된 맛의 추억으로 회사를 떠난 이후에도 기회만 되면 국숫집에 들렀다. 가격이 차츰 조금씩 오르더니 코로나19 이후 가파르게 인상돼 지금은 9,000원까지 올랐다.
과거엔 국수 한 그릇과 사리가 따로 제공되던 것이 이젠 아예 한 그릇으로 나오는 듯 양이 제법 많아졌다. 그래서 양이 적다 싶은 여성들은 한 그릇 다 비우기가 쉽지 않다. 국수 한 그릇과 만두를 주문해 나눠 먹는 요령이 필요하다. 고기만두와 김치만두가 제법 실하게 양도 많다.
밀가루 칼국수가 식당 메뉴로 등장한 것은 6·25전쟁이 끝나고부터다.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는 1955년 초등학교에 무상 제공 되면서 시중에 널리 풀렸다. 박정희 정권의 혼분식 장려 정책도 칼국수 소비를 늘리는 데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