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점직원 Nov 26. 2020

私小한 우울의 시작#1

1. 나의 우울의 시작점(1)

나의 우울의 시작은 어디일까? #.3


정확하게 내가 우울을 우울로 인식할 수 있는 시기는 고등학교 때다. 


나는 송파구 잠실에 살았고 매우 평범한 학생이었다. 잠실이 지금 처럼 고층 아파트의 숲을 이루기 전 주공아파트가 우리 집이었다.


집에서 버스로 20분쯤 거리에 있는 송파구의 끝자락에 있는 남자 중학교에 다녔다. 성적을 내면 반에서 10등 정도? 공부를 그럭저럭 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송파구에 있는 잠실 고등학교나 잠신, 그것도 아니면 배명 고등학교 정도에 배정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송파구는 강남구와 같은 8학군이지만 같은 8학군이 아니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적을 것 같다. 


나는 이상하게도 송파구가 아닌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이 걸어서 5분 거리인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8학군이라는 이유로. 개인적인 생각엔 교육청의 명분 쌓기가 아니었나 싶다. 같은 8학군인데 강남구와 송파구가 완전히 분리 되어 있다면 이상하니까 말이다. 매우 소수의 송파구 학생들을 강남구와 교차 배정하는데 진짜 ‘재수없게’ 내가 그 케이스가 된 거다. 우리 학교 졸업생 중에서는 5명만이 강남의 고등학교로 갔고, 내 모교로는 중학교 때 꽤나 사고치던 두 명 포함해서 나까지 세 명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나는, 역시나 같은 8학군의 학생이었지만 같은 8학군 학생이 아니었다. 무척 적응하기 힘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이미 그곳의 아이들은 인생의 (적어도 단기적이긴 하지만 구체적인)목표를 세우고 그 지향을 향해서 아주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학교든, 직업이든 직장이든 말이다. 진로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없던 나에게는 충격적일 정도였다.


이런 친구가 있었다. 1학년 우리 반만 해도 주재원(또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로 갔다가 돌아온 친구가 5~6명은 있었다. 통계적으로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대학을 간 녀석들이 10%를 웃돌았다. 그 중 한 녀석이 나와 같은 대학의 건축과로 진학을 했는데, 우리 학교는 건축과가 가장 유명한 학교다. 다른 명문학교의 좋은 과는 재외국민 특별전형 역시 경쟁이 치열하니까 상대적으로 낮은 학교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분명 성실한 친구이긴 했지만 건축과를 갈만큼의 실력이 있던 친구는 아니었다. 


이 친구와 비슷하게 대부분이 아이들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어드밴티지를 활용할 줄 알았고 대체로 자신들의 계획이나 기준에 맞는 방식으로 대학이나 진로를 결정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분명 자신들의 프로세스가 틀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 아이들은 방법론적으로 반수가 됐건, 편입이 됐건 유학이 됐건 간에 자신들이 걸어가야 할 루트를 다시 제대로 찾았다.  


그 나이 또래들이 대체로 자신들이 예체능에 관심이 있고 소질이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내가 미술에 재능이 있는 줄 착각하며 살았다. 나는 부모님께 미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가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을 당했다. 그 이후로 두번 다시 미술 전공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고1 우리 반만 해도 벌써 입시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꽤 여럿 있었다. 몇몇은 예중이나 예고 입시에 실패를 한 경우도 있었고, 종종 대학에 입학하는 수단으로 입시 미술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그저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미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나처럼 나이브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실패했거나 시도 자체가 틀려서 다른 분야를 도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는 사람들 종종 만난다. (내게 있어서는) 굉장히 재수 없는 이야기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 분야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했고, 다시 다른 분야에서 재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 이들이 요즘은 책도 쓰고 멘토도 되고 리더가 된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지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채.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이 실은 경제력에 의거 하지만 경제력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감추어져 있어서 문화자본의 상징적 힘이 생긴다고 했다. 실패의 극복학, 재도전의 역학에도 비슷한 맥락이 숨겨져 있다. 결국 경제력의 문제와 계급의 문제다. 마치 전반적으로 생활 수준이 높아진 것처럼 통계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낸 허위적 중산층 말고 진짜 중산층들의 몸에 벤 계급성이랄까? 그것을 실제로 목도하고 맥락을 간파하고 나면 허파에서 바람이 빠져나가거나 또는 바람이 들어가듯 사람이 허탈해지는 것이다.  특권을 특권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권이 없는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실존적 반응이 바로 우울이 아닐런지.

작가의 이전글 私小한 우울에 대한 탐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