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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자리 Dec 21. 2017

끈으로 묶은 인연

가자, 하시길래 네, 하고 따라나섰죠. 그게 다예요.


지금 까지 오체투지 관련해서 인터뷰 많이 하셨죠?


인터뷰요? 저 많이 안 했어요. 내 이야긴 너무 단순한데... 

제가 사는 여기 실상사에서 연관 스님을 뵈었죠. 

오체투지를 어떻게 하게 됐나 이야기를 하려면 

오체투지 이전에 강순례 이야기를 해야 하는 데요. 

수경 스님께서 연관 스님께 강순례를 하자고 제안을 하셨어요. 

꼭 같이 해야 한다. 이거는 우리가 지금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연관 스님도 이거 꼭 도와줘야 한다. 하셨어요. 

제가 연관 스님의 속가 상좌기 때문에 수경 스님을 뵈러 서울에 연관 스님을 모시고 올라갔었죠. 

수경 스님이 연관 스님과 이야기를 하시다가 '넌 뭐할래? '

나에게 의중을 물어보신 게 아니구요, (웃음) 내가 하겠다 모 이런 의중은 없구요. 

'넌 뭐할래?' 그러셨어요. 그래서 바로 제가 그랬어요. '밥 하겠습니다.'

진짜요. 아무 생각 없이. '밥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야! 그거 좋다.' 

그래서 강순례에서 밥 하게 됐어요. 그리고 강순례가 끝났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 4대 종단 성직자들이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며 강순례에 나섰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스님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어요. 

'가자'

'어디요?'

'오체투지 하기로 했다.'

많이 말렸어요. 스님 건강이 안 좋으셔서 명호도 전화가 오고

이거 안된다, 안된다. 근데 모. 당신 고집을 꺾을 수가 있어야죠. 

'가자'

'네' 

그게 다예요. 뭐 '안돼요.'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었어요. 

우린  '안돼요' 가 안 되는 사람들이잖아요.(웃움)

'네'하고 하게 됐죠. 그게 다예요. 뭐가 더 없어요.


'가자'
'네' 
그게 다예요. 뭐 '안돼요.'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었어요. 
우린  '안돼요' 가 안 되는
사람들이잖아요.(웃움)
'네'하고 하게 됐죠.
그게 다예요.
뭐가 더 없어요.



연관 스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되세요? 


그게 참 재미난 이야긴데요.  

귀농학교를 졸업하고 지리산에 있을 때 

지금으로부터도 10년 전이죠. 우리 집 앞에 조그만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 앉아있는데 스님이 오셔서 호두를 사셨어요. 

선물을 하신다고 포장 해야하는데... 난감해 하셔서

그때 제가 해드릴게요. 하고는 수건으로 척척 묶어서 잘 싸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연관 스님이 참 고맙다고 나중에 서원에 들러서 차 한잔 하자 하셔서

예, 그러고 지나갔는데 그 후에 실상사에서 무슨 행사가 있었어요. 

거기서 연관 스님을 다시 뵈었죠. 

'어, 차사, 우리 차 한잔 마시자'하시면서 암자에 데리고 가셨어요. 

그렇게 된 인연이에요. 

내가 끈으로 묶은 인연이죠. 참 재밌죠. 제가 끈으로 묶은 인연. 

난 그렇게 이야기해요(웃음)

모 단순해요. 그렇게 인연이 됐어요. 


마치 선문답 같은 인연이죠. 모 그분을 존경하고... 그래서가 아니고

그 후로 지금까지 모시면서
내가 사는데 가장 도움을 많이 주신 제 스승님이시죠. 

지금까지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지금으로부터도 10년 전이죠.
우리 집 앞에 조그만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 앉아있는데 스님이 오셔서 호두를 사셨어요. 
선물을 하신다고 포장  해야하는데.. 난감해 하셔서
그때 제가 해드릴게요. 하고는
수건으로 척척 묶어서 잘 싸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연관 스님이 참 고맙다고
나중에 서원에 들러서 차 한잔 하자 하셔서
예.. 그러고 지나갔는데
그 후에 실상사에서 행사가 있었어요. 
거기서 연관 스님을 다시 뵈었죠. 
'어, 차사, 우리 차 한잔 마시자' 하시면서
 암자에 데리고 가셨어요. 그렇게 된 인연이에요. 
내가 끈으로 묶은 인연이죠. 내가 그렇게 말해요.
끈으로 묶은 인연



강순례 때 연관 스님도 함께 하셨죠. 그래서 그때 밥을 하게 됐고. 

그게 연이 돼서 오체투지까지 함께 한 거죠. 

만약 연관 스님이 강순례를 안 하셨으면 나도 안 갔을 거예요. 

갈 이유가 없죠 모. 

그니까 뭐 내가 큰 목적과 이념이 있어서 스스로 간 게 아니구요. 

난 그냥 스님 모시고 서울 갔는데 

넌 뭐하겠냐고 하셔서 밥하겠다고 한 거죠. 

스님 앞에서는 '안돼요'가 잘 안돼요. 생각을 해보세요. 

좋은 일을 하시겠다는데 못하겠다 할 수가 있나요? 

그때 강순례 때는 정말 인원이 없었어요. 

밥 하겠다고 하니까 되게 좋아하셨거든.




좀 더 앞으로 가서 여쭤봐도 될까요? 

귀농학교는 어떻게 결심하신거에요? 그것도 큰 결심이잖아요. 


귀농학교를 오게 된 거는 직장 다니다가 IMF 때 잘렸어요.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광고회살 다녔는데요.

디자이너는 정년이 40이에요.
왜냐면 자꾸 바뀌는 신세대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이 일을 해야 하니까.
금방 밀려나요. 40이 정년이에요. 그 대신 월급이 좀 많죠. 그만둘 때가 40대였죠.

그때 그만뒀는데 그러고 나서 친구랑 뭘 했는데 안 하던 일 하니까 6개월 만에 반은 까먹었죠. 

반을 까먹고 나서는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뭔가. 제일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러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디자인하기 전에는 순수 미술을 했거든요. 

먹고살기 위해서 디자인을 한 거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이 곳으로 내려온거에요. 

그림을 그리고 시골에서 살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골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해서요.
그래서 귀농학교를 다녔죠.
그때 귀농학교 동기로 우리나라 최고의 조선 목불 조각가 선생님과 인연이 됐어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거 말고 나무를 다루게 됐죠. 불상 조각을 배웠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나를 가르쳐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났다는 게 너무 좋았죠. 

그분께 배워서 먹고살아요. 그게 아니면 먹고살지 못했을 꺼에요. 

지금까지 10여 년을 버틴 것도 조각을 배워서 산거죠. 

내 삶은 간단간단해요. 군더더기가 별로 없고. 


원래 종교는 불교가 아니고 기독교였어요. 좀 게으른 기독교인요. 

근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안국동에서 전시회도 보고 그러잖아요. 

그때 안국동에서도 스님을 본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제 눈으로는.

그만큼 불교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죠. 원래는 

물론 실상사 귀농학교를 다녀서 불교를 알게 되었다 할 수도 있지만 

연관 스님 알게 되면서 불교에 입문하게 됐죠. 자꾸 보고 말씀을 듣고 하면서

이제 안국동에 가면 스님밖에는 눈에 안 보여요. (웃음) 


연관 스님은 학자세요. 불교학자시고, 글 쓰고 번역을 하시는데 

따른 말은 필요없구요. 

부처님 오신 날 암자에 등 키는 게 싫어서 배낭 메고 산에 가시는 분이에요. 

누구한테 시주를 받아서 사는, 당신은 시주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셔서 

스스로 번역하고 책을 써서 자기 삶을 사시는 분. 

어디 가서 뭘 해도 당신이 돈을 내세요. 

대부분 스님, 목사, 검사, 경찰, 기자 들은 

자기가 돈 안내는 사람들이에요. 다 얻어먹죠. 

잘 나서지 않으시는 분이구요. 

큰 스님이시죠. 본인을 내세우지 않는

우리는 편해요. 참. 큰 스님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만나려면 예약을 하고 허락을 맡고 그러거든요. 

워낙에 스케줄이 많으실 테니까. 어쩔 수 없죠. 모 

연관 스님... 스케줄 없어요. 스님! 하면 어! 들어와... 이거죠 모. 

선방에 6개월 계시고 6개월은 여기 나오셔서 번역하시고.. 


근데 오체투지 이야긴 안 물어봐요? (웃음)

천천히 합시다. 밥은 먹었어요? 일단 우리 같이 밥먹어요. 



큰 스님이시죠. 본인을 내세우지 않는
우리는 편해요. 참. 큰 스님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만나려면 예약을 하고 허락을 맡고 그러거든요. 
워낙에 스케줄이 많으실 테니까.
어쩔 수 없죠. 모 

연관 스님... 스케줄 없어요.
스님! 하면 어! 들어와... 이거죠 모. 







조항우 짬장님을 소개합니다 - Daum 카페                                                                                          



살림꾼 조항우 짬장
저희 순례단의 피와 살이되는 재정과 살림을 맡고 있는 
조항우 짬장님을 소개합니다. 


순례단에서 가장 여유로운 카리스마시구요.
순례단에 필요한 물품과 장비, 기타의 모든 제반 상황들을
뒤에서 돌보아주고 계십니다. 


늘 새벽일찍 일어나
김희흔 선생님과 함께 아침을 준비하시고
순례단 밥차를 끌고 점심먹을 자리
잠잘 자리, 필요한 물품을 찾아 
동분서주하십니다.


조항우 짬장님은 조각가이십니다.
지리산에서 항우공방을 운영하시면서 
조각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시는 수업을 하시는데요.


요즘  순례단에 합류하시느라
모든 수업을 월요일로 옮기셔서
월요일엔 조짬장님이 자리를 비우십니다.


조항우 짬장님이 안계시면 
제일 섭섭해 하시는 분은 수경스님이세요.


항우 왔냐? 모하러 안온다냐?
전화 한번 해보지...
저희도 조짬장님 없는 자리가
크게 느껴져 돌아오시면 마음이 놓입니다. 


조짬장님이 오시면 
순례단에  아빠가 돌아오신 느낌입니다. 
넉넉하고 품넓은 선배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아플때 배고플때, 모가 필요할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분입니다.
예쁘게 보일 필요가 있겠죠?ㅎㅎ







________________


조항우 님은

오체투지 순례 내내 밥차를 움직여 수행단의 식사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현재 지리산 실상사 옆 전통찻집 <소풍>과 항우공방을 운영하시고

조각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문정현 신부님의 조각 선생님이시기도 합니다. 아마 평생 자랑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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