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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ul 29. 2020

홍양이 다가오고 있다

한 달에 한번.

가임기에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찾아온다는 그날.


여자들 사이에서는 마법, 홍양, 그날이라는 단어로 지칭되는 그날이 찾아올 즈음이면 나에게도 변화가 시작된다.


이유 없이 늘어나는 짜증과 무기력함 그리고 달달한 군것질거리에 대한 식욕폭발의 본능이 살아나면 난 여지없이 달력을 들어 날짜를 확인하고는 여지없이 찾아오게 될 홍양의 방문에 미리 마음을 다스리고는 한다.


어제도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저께부터 이유 없는 짜증스러움이 치솟았는데 어제는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그 짜증스러움이 마음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가 오는 끈적하면서도 꿉꿉한 느낌이 짜증 났고 괜스레 그동안 회사에서 당했던 수모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며칠째 하고 있는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사실이 못 견디게 화가 났다.



결국 나는 회사의 전산에 오후 반차를 입력하기 시작했고 겨우 마음을 다잡아 회사에서의 반나절을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얼마 전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로 향했다.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는 커피 한잔과 배를 채울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했다.

오늘만큼은 돈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걸 다 먹으리라는 각오로 주문된 커피와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삼켜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다 삼켜냈을 즈음 나는 유튜브에 있는 영상들을 하나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흔히 기분이 허할 때면 인간극장과 같은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흘러나오는 프로그램들이 짧게 짧게 편집된 영상들을 보고는 하는데 어제는 우연히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들의 사연이 방송되었던 프로그램들의 편집본을 보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암 판정으로 시한부 결정을 받았다는 아이 둘 엄마의 사연을 시작으로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한 후 암 판정을 받은 아내의 사연까지 몇 편의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영상들을 보면서 소리 죽여 한 시간 넘게 울고 나니 마음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불행으로 내 인생의 행복을 저울질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런저런 핑계들로 무기력해지고 있었던 나를 스스로 다잡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펑펑 울고 잠시 책을 보다가 퇴근시간 무렵 집으로 돌아가자 딸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와 나를 반겼다.


요즘따라 떼도 애교도 늘어가는 딸내미는 생리 전 증후군으로 무기력하게 멍하니 누워있던 나의 볼에 갑자기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엄마 사랑해."


다섯 살짜리 딸내미 눈에도 무언가 평소와 달리 지쳐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 생소해 보였는지 평소에는 해달라고 졸라도 잘해주지 않던 뽀뽀를 쪼옥 먼저 해주었다.


"고마워 우리 딸이 최고네."


딸아이의  기습뽀뽀에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딸아이가 손으로 하트까지 날리며 멀리 꺼내놓은 장난감들이 가득한 본인만의 놀이공간 쪽으로 뛰어간다.


'그래 사는 게 별거냐.'


딸아이의 애교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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