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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an 06. 2021

상상임신이 현실이 되다


매달 찾아오던 홍양의 소식이 저번 달에는 날짜가 되었음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간혹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면 늦어지는 경우가 있었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임신 확인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얼리 임신테스트기를 사서 떨리는 마음으로 테스트기를 확인한 결과,

선명한 한 줄이 나에게 임신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알 수 없는 예감에 또다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또 해보게?"


나의 손에 들린 테스트기를 발견한 남편이 재차 물었다.


"그냥 저번 테스트 시기가 너무 빨랐나 싶어서.."


나의 대답에 남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임신이 아니라는 한 줄의 결과에 나는 임신이 아님을 확신  혹시나 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하게 몇 년 전 영원이를 가졌을 때의 증상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평소 하루 한 끼 정도는 거뜬히 굶을 수 있는 편이었는데  며칠은 유난히도 공복감을 디기 힘들었다.

거기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가왔던 일상의 냄새들이 하나둘씩 예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의 의심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건 누워도 누워도 자꾸만 눕고 싶 나 무기력함이었다.


"나 아무래도 상상임신인가 봐."


나의 농담 섞인 진심에 남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뭐든 삼세판이니 다시 한번 테스트기를 해보라는 얘기를 덧붙였다.


"아니야 그냥 괜히 그런 느낌이 드는 거겠지. 아닐 거야"


나는 남편의 조언을 웃음으로 넘기 새해를 맞이했고

몇 번고민 끝에 정기 검진 받을 겸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임신입니다. 모르셨어요?!"


흔히 굴욕 의자라고 불리는 의자에 앉아 마주한 인자한 인상의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화면으보이는 나의 자궁 속 선명한 아기집의 모습을 가리키며 얘기하셨다.


"?! 분명 테스트기에서는 아니라고 나왔는데..

제가 계획한 게 아니라서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내 표정을 눈치채신 의사 선생님은  재빨리 아이의 심장소리 내 시선을 돌리셨다.


"들리시죠? 잘 뛰고 있어요.

아마도 테스트기 사용 시기가 조금 이르셨나 보네요.

살짝 유산기가 있긴 하신데 그래도 잘 자리 잡았어요.

임신.. 계 유지하실 거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기의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향해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레 나의 의견을 물으셨다.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온 나는 한참을 멍하니 병원 대기의자에 앉아있다 가까스로 휴대전화를 꺼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옆에서 해맑게 들리는 영원이의 목소리와 함께 진료가 끝났냐는 남편의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임신이래.. 엉엉.. 어떻게 해.."


훌쩍훌쩍거리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남편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금세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잘 키워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가까스로 병원문을 나서던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첫 번째는 육아휴직 후 둘째의 육아까지 부탁해야 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었고

두 번째는 회사에서 곧 있게 될 승진인사에 대한 생각이었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아이를 품은 이 순간에도 나는 회사의 승진인사를 떠올려야 했는지 괜스레 서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작년 연말에 있을 것처럼 보였던 승진인사가 이렇다 할 얘기도 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밀리고 소리 없이 인사계획이 사라져서 이미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은 상황에 다시 이렇게 미뤄지게 된다면 곧 아이를 출산하러 들어가야 하는 나에게는 기회조차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것 따위는 지금 신경 쓰지 말자고 내 인생에 새 생명을 품은 것만큼 지금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겠냐며 계속해서 나를 달래 봤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나를 이렇게까지 만든 회사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 임신했어요.."


새해 다시 업무가 시작된 회사로 돌아간 나는 아직 이 말을 회사에 꺼내지 못했다.


이 말이 나에 대한 인사평가결과에서 어떤 약점과 변명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임신 초기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도 회사에는 이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게 무슨 약점이야.

그런 돼도 안 되는 핑계로 이번에도 밀리면 내가 같이 싸워줄게."


임신소식을 전하며 이런 생각이 함께 들어 서글펐다는 얘기를 전하자 김대리가 축하의 말과 함께 안 그래도 지금 지켜보고 있는데 이번에도 인사로 장난질 치면 가만 안 있을 거라며 씩씩거렸다.


'그래. 이게 무슨 약점이야.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아이의 심장소리가 뛰고 있는 나의 배를 손으로 문지르며 나는 태어나게 될 아이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엄마가 꼭 지켜줄게.

너는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엄마도 맞서 싸워볼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 예쁜 아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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