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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고래 Sep 18. 2016

어떻게 살아가야

길 위에 서서


 가끔 이런 생각들이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지금 난 잘 살고 있는걸까?'

'내가 진짜 하고싶은 일은 뭐지?'


 무슨 과를 선택할까, 어떤 회사에 입사를 할까 고민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서른즈음 나이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엉뚱하고 꽤나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의 몫이 되어버렸다.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들도 사는 게 바빠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회사일은 또 회사일대로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루가 너무 빠르고 일주일이 너무 빨랐다.


그 빠른 것들에 비해 나는 성장하지 못하고 길을 잃은 방랑자의 모습이다.

 

 "난 정말 너가 외국가서 살 줄 알았다."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나는 전공이 스페인어였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배운 제 2외국어가 일본어이고 그냥 일본어가 좋아서 일본어과를 가고 싶었는데 한 날은 TV에 나오는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와 '산페르민 축제'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되었고 졸업을 하고 나서 운좋게 멕시코로 가게 되어 공부를 하고 한국 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한국 대기업만큼의 페이를 받았었고 미국 출장도 잦아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막연한 부러움을 받았었다. 하지만 난 행복하지 않았다. 그만두게 된 확실한 이유는 불분명했고 그냥 탈출구만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난 1년의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난 한국에 돌아와 한 한의원의 실장으로 입사를 하였고 그곳에서 2년을 근무하면서 원장님의 권유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2년 가까이 다니던 한의원을 그만두고 규모가 큰 종합병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안정된 삶을 살고자 했던 내 뜻과는 달리 나의 인생은 태풍이 치는 바다처럼 울렁거렸다.

이 악물고 버티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있었고 뭐가 옳은 건지 모르는 내 자신이 밉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직도 끝맺음 짓지 못하는 내가 지금 여기 있다.



 이번 추석에 할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으로 온 친척들이 모였다. 큰엄마가 해오신 갈비찜과 여러가지 전들로 가득찬 추석상 위로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의 수다는 꽃을 피웠고, 그 중심엔 사촌오빠의 퇴사발표가 있었다. 사촌오빠는 2년 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꿈의 기업에 당당히 합격을 하여 모든 친척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나를 포함한 어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니 그게 나에게도 좋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마음이 받아드리지 못하더라구요. 돈을 적게 받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어요."

 난 아들의 그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계시는 고모와 고모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쉬운 표정 뒤에 아들의 삶에, 아니 어쩌면 자신들도 겪었던 삶에 대한 이해가 자리잡아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얼마전, 회식자리에서 과장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과장님,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요?" 나를 포함한 다른 선생님들이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그래도 과장님은 똑똑하시고 그래도 거의 다 이루고 사시잖아요."

그러자 과장님은 맥주를 한 잔 마시고는 웃으며 말하셨다.

  "아니, 그건 아무도 모르는거야.나도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지도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 한번씩 우리가 '비전(vision)'이라는 말을 쓰잖아. 그런데 미래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거야. 어른들 말이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니고 너희가 찾아 나서야지."

 우리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자 과장님이 한마디 덧붙이셨다.

 

 "더 삶을 오래산 나도 뭐가 정답인 줄 모르는데 너네들한테 이거해라, 저거해라 말을 못해주지. 그런데 말이야. 한가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배움'이라는 게 삶을 훨씬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준다는 거."



 높게 펼쳐진 가을 하늘은 나의 지난날을 회상하기에 딱 좋았다.

선택이 쉬웠고 포기도 쉬웠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탱탱볼과도 같았다. 내가 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남들의 시선이 신경쓰이기 시작했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최고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이 돌아보니 초라한 조각들 뿐이었고 그 위엔 나약해진 내가 서 있었다.

 지금은 선택을 해버리기에도 포기를 해버리기에도 조금은 무거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길을 걸어간다는 건 참으로 두렵고 막막하다. 어디가 좋은 길인지 모른 채 그냥 걸어가고 있다. 막다른 길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몰라 목놓아 울기도 하고 내가 선택했던 길은 벼랑끝일 수도 있으며,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다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에 다치기도 한다. 하지만 길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어디로든 뻗쳐있으며 나는 그저 길 위에 서있다. 어쩌면 나는 막다른 길 위에서 울고 있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는 동행자를 만나 함께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벼랑끝에 서서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의 풍경을 실컷 바라보다 돌아올 수도 있기에 길을 계속 걸어가야만 할 것이다. 아무도 모르니깐.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길을 걸어간다는 건 참으로 두렵고 막막하다. 하지만 꽤나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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