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나나킥 Jan 06. 2016

토요일 오후의 규슈상선

구마모토로 향하는 규슈상선 3층 객실 왼쪽 창가에 앉았다. 1층은 차량을 적재하고 나머지 층이 객실인 평범한 페리였다. 3층만 해도 좌석이 100석이 넘지만 승객은 스무명 남짓이었다. 객실에선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느껴졌다.


오후 두시가 되도록 밥을 못 먹었다. 시마바라에서 돌아다니느라 밥 먹을 새가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돈이 문제였다. 숙소에 돈을 놓고 온 데다, 배삯까지 치루니 수중엔 2000엔 남짓 남았다.  


창밖으로 벤치에 4인 가족이 보였다. 30대 후반 부부에 딸은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은 3학년 쯤 됐을까. 다정해 보이기도 했지만, 아들이 먹고 있는 컵라면이 맛있어 보여 눈여 띄었다.


컵라면 정도 사먹을 돈은 있지만 혹시 모르니 참기로 했다. 구마모토까지 갔으니 고쿠테이란 유명 맛집 라멘을 먹을 것이다. 구마모토는 말고기 육회 ‘바사시’가 유명하다지만 애초에 먹을 생각은 없었다.


지갑엔 엔화 말고도 우리나라 돈 만원 네 장이 들어있었다. 구마모토에 가면 환전을 하자. 구마모토는 비교적 큰 도시니 환전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럼 엔화 6000엔을 확보할 수 있다.

구마모토성 입장료 500엔, 고쿠테이 라멘 1000엔, 시내 교통비 500엔 쓰면 4000엔이 남는다. 그 정도면 마음 편히 나가사키로 돌아갈 수 있다. 시간 여유가 되면 구마모토성 근처라는 나쓰메 소세키 생가도 방문할 수 있겠다.


밖으로 나가 난간에 기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비둘기가 날아들었다. ‘항해 중 비둘기가 나타난다는 것은 육지가 근처란 뜻’이라던데, 과연 구마모토 부두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릴 채비를 하며 한 시간의 궁상을 마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마바라에서 만난 히치하이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