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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Sep 12. 2022

내 이야기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곳에 나는 계속 존재하고 있는걸까


문득 문득 슬퍼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바쁠 때 종종 그런 감정을 마주한다. 싫은 것이랑은 조금 다르다. 어릴 때 겪었던, 연애의 순간에 찾아오는 슬픔 같은 것과도 결이 다르다. 그냥 책상에 앉아서 오늘 할 일을 정리하다가 문득 찾아오는 우울 같은 것이 있다. 그렇다고 자리에 일어나거나, 슬픔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함에 빠지게 되지도 않는다. (때로는 이미 무력함에 젖은 시간 이후에, 마주하게 되는 바쁜 일상을 목격하고 찾아올 때도 있긴 하다.) 


나는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모든 걸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하고 싶은 마음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늘 한 쪽 발은 도망칠 수 있는 방향으로 빼놓은 채, 다른 발을 힘겹게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보니 비틀린 몸으로 나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낯설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쁜 건 좋은 일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젊음의 시기에, 미래에 자산이 될 수도 있는 바쁜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건 복된 일이다. 그리고 그 때는 그게 그렇게 소중한지도 모르고, 그렇게 힘든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여전히 젊음에 속하는 나이이긴 하지만, 점점 내가 스스로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때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그때의 내 생각과 지금의 내 생각은 다르고, 삶의 방향도 가치도 태도도 많은 것들이 다르다. 나의 존재는 여전할지 모르지만, 시간이라는 평행선 안에서 모든 것들이 달라져있다. 스무살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시에 데려다놓고 질문을 했을 때, 매번 같은 답이 나올 거라고 자신할 수 없다. 오히려 둘이 서로 다른 답을 할 수도 있다는 건 자신할 수 있다. 만약 같은 답이 나오더라도, 그게 십년 후의 나에게도 같은 대답이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과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늘 삶의 문제는, 뭔가 지나쳤을 때 생겨난다.


할 일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바쁘면 슬프고,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바쁜 건 수많은 기대와 걱정을 떠안고 책임지고 나아가는 일이다. 어깨가 무겁고, 잠자리가 불편하다. 할 일이 없으면 이대로 낙하할까봐 불안하고, 내 삶이 혹시 더 나빠지진 않을까봐 신경이 쓰인다. 발걸음이 무겁고, 아침이 불편하다. 나는 그 오르락과 내리락을 왔다갔다 하면서 삶을 컨트롤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고점과 저점을 교차하는,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에 나는 편안함, 때로는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즐거움이나 행복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처럼 순간, 지나가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걸 보는 일이 삶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 만큼은 결코 작지 않다.


온전히 책임을 지는 일은, 때로는 무서울만큼 과감하고 냉정해져야 하는 일이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깊이 고민해야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해야한다. 처음엔 잘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과감할 수 있고, 그래서 실패도 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게 되고, 그 길을 향해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세상엔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던 길도, 때로는 막힐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다. 

예전에 알던 외국인이, 자기는 대화할 때 눈빛을 피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눈을 보면서 말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화할 때는 조금 주눅이 들더라도, 자신이 속한 곳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자신감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과신하는 순간, 부러질 수 있음을 염두해야 한다. 


왜 글을 시작했는지를 다시 떠올린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 아니다. 벌써 9월도 중순을 향해 간다. 추석이 지났고, 이제 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21년부터 한해가 넘도록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왠지 운명적인 흐름을 느낀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스워보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냥 왠지 그런, 왠지 작년부터 시작한 이 흐름과 앞으로의 몇년이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나는 삼십대가 오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은 커녕, 신경쓰이지도 않았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마흔은 조금 다르다. 나는 이제 뭔가, 앞으로 나 자신으로서 그려가야할 미래에 대한 포부나 스케치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 있다. 


이제서야, 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 스스로는 비로소, 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 '평가'라는 단어 안에 자신을 넣는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게 연휴를 한시간 앞둔 사람으로서의 감정이라면, 오히려 솔직함이라고 변명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또, 야심한 밤을 핑계 삼아 주절주절 이야기를 열어낸 시간을 조심스레 닫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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