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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May 31. 2023

필요한 이기심

부페에서 벌어지는 배려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하여

(부제는 농담입니다.)


결혼식 후 식사는 뷔페였다. 아이를 데려온 친구가 음식 아무거나 더 떠달라고 했다. 나는 친구를 배려하겠다고, 이것저것 음식을 잔뜩 담았다.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음식이 남았다. 나도 안먹고 친구도 안먹는 음식이 있었다. 내가 먹을 거만 떴다면 남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독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친구를 탓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이를 데려오지 말라는 말도 물론 아니다. 뷔페는 결국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것들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약속만 지키면 된다. 남기지 않을 것, 먹을만큼만 담을 것. 이 조건을 지키기 위해선 내가 원하는 걸 내가 담는게 중요하다.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문제가 된다. 사람은 상대를 완전하게 알 수 없고, 상대의 취향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현재 상태에 대해선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테다. 대신 아기를 봐줄 수도 있고, 미리 먹고 싶은 걸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배려의 방법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배려는 이기심 속에서 발현된다. 뷔페에서 내 욕구와 상황에 맞는 걸 나만의 그릇에 담아내는 건,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타인을 위한 일도 된다. 그리고 그건 시스템 속에서 모두 인정하고 이해하는 관계 속에 안전하게 구현될 수 있다.


왜 남겨. 나는 뷔페에서 나오는 육회 안먹어. 너 먹으라고 뜬 건데. 나는 원래 뷔페 육회 안먹는다니까. 너 육회 좋아하잖아. 육회는 좋아하는데, 이건 먹기 싫어. 아니, 너 먹으라고 떠온 건데. 그럼 네가 먹어. 나는 고기 안먹잖아. 그럼 뭐하러 떠왔어, 그냥 남겨. 남기면 안되지. 


어떤 배려는 무용한 것을 넘어, 무례할 때도 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뷔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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