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IT AGAIN. 아마추어, 쇼팽에 도전하다.
혹시 연필이나 지우개를 완전히 다 써본 기억이 있는가. 나도 꽤 어린 시절부터 연필과 지우개를 사용했지만, 기능을 상실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종결'의 순간에 다다른 적은 없었다. 물론 극도로 짧아진 연필이나 힘을 주기 어려운 수준으로 작아진 지우개를 끝까지 사용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그 '끝'에 이르렀다는 어떤 만족감 같은 감정적인 기억은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살면서 '끝에 이르지 못한'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는다. 역량이 부족이었든, 환경이 받쳐주지 못했건 간에 다양한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돌아가거나, 도망치거나, 지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쌓인 경험들이 조금씩 무게를 가질 때, 아쉬움을 느낀다.
<다시, 피아노>는 영국 <가디언>지의 편집국장이었던 앨런 러스브리저가 쉰이 넘은 나이에 '쇼팽의 발라드 1번'을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은 프로 피아니스트들조차 '표현하기 까다로운 곡'으로 꼽히는 작품이었다. 심지어 그는 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격무까지 겸해야 했으므로 피아노 연주에 쏟을 시간은 늘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위키리크스 사건, 영국 전화 도감청 사건, 동일본 대지진, 아랍의 봄과 같은 핵폭탄 급의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나가는 시기였다. 오히려 중간에 도망치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다. 그가 비록 어린 시절 피아노를 꽤 잘 쳤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쇼팽의 벽은 '상상하기 어려운 도전'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18개월 동안 좌절하고 실망하면서도 계속 나아간다.
인상적인 부분은 상세하고 솔직한 그의 기록이었다. 원하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 겪게 되는 모든 좌절과 실패들을 차곡차곡 담담하게 서술한 꾸준함이 놀라웠다. 모두가 도전을 하면서 살지만 이렇게 상세하게 자신의 도전을 기록하며 나아간 경험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복잡한 쇼팽의 곡에 도전하면서 끙끙대며 나아간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레슨을 받거나 전문가를 찾는다. 그들에게 묻고 또 물으며 꽉 막힌듯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는다. 피아노를 배워나가며 생겨나는 풍부한 호기심들을 계속해서 더듬어나간다. 단순히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라는 욕망만으로 채워진 글이 아니다. 아마추어로서 가지는 수많은 난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아노와 쇼팽을 이해하며, 음악이라는 놀라운 가치에 다시금 깨닫는 이야기다.
그의 기록을 조금씩 읽어나가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공명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였거나, 아마추어이거나, 아마추어가 될 터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꼼꼼하게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르익는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에 직업을 가진 쉰 살의 저자도 해냈으니까! 혹시 취미에 무언가 매너리즘을 느끼거나 삶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면 읽어봄이 어떨까. 나도 당신도 자신만의 쇼팽, 자신만의 피아노를 찾아 더 풍성한 삶을 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