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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Oct 06. 2022

로그북

어제를 적어! 내일 볼 거야.



코치님, 오늘 다녀온 항해를 기록하고 싶은데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아, 로그북이요?


항해에서 그날의 날씨부터 바람, 파도 등 관측 가능한 모든 종류의 기상상황과 항해 중 특이사항을 기록한 일지를 로그북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셨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로그log는 ‘지난 기록’의 의미로 컴퓨터에서 익숙하게 쓰고 있는 용어와 같다. 단어는 ‘통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아주 과거에 물에 통나무를 띄워서 배의 속도를 측정했다고 적혀 있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로그북.


요즘은 기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이 다양하고 또 잘 나와 있어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선택해서 보면 된다. 나는 windfinder라는 앱을 주로 사용했는데 코치는 windy라는 앱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알려주었다. 앱을 켜고 내가 다녀온 바다를 확인했다. 2022년 10월 5일, 제주 김녕 앞바다는 북서풍이 9m/s 크기로 불었다. 조류는 들물이어서 동에서 서로 흘렀는데 파도와 바람이 사나워서 조류까지 신경 쓰기 어려웠다.


12:40쯤 도착해서 1시 조금 지나 배를 띄웠다. 거센 바다여서, 코치는 너무 멀리 나가지 말라고 단속했다. 바람을 거슬러 올라간 다음 바람을 등지고 내려오는 연습을 주로 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강한 바람이니 전복도 여러 번 될 거라고, 그 연습도 하라고 했다. 숙제를 받았으니 나가자.


현대 항해술은 영국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주요 용어는 영어, 그중에서도 영국식이라고 한다. 돛을 가진 배는 바람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는 없지만 돛의 한쪽으로 바람을 흘리는 방식으로 지그재그로 진행하며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때 돛과 배가 이루는 각도는 좁아서 배는 바람 속을 찔러 들어가는 한 개 창처럼 뾰족하다. 바람의 왼편으로 항로를 맞춘 후 조금 올라가서 다시 바람의 오른편으로 배를 돌리고 다시 왼편으로 돌리는 과정을 반복하면 배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어느 정도 바람을 타고 올라갔다 싶으면 순간적으로 방향을 돌려 바람을 등지고 앉는다. 그때까지 나를 바람 위로 밀어 올렸던 돛이 넓게 펼쳐지면서 가능한 가장 큰 면적으로 바람을 받도록 각도를 바꾼다. 뒷바람을 가득 받아서 바람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코스를 Run 코스라고 부른다. 


런 코스는 조용하다. 바람을 거슬러가는 다른 코스와 달리 이 코스에서 배는 바람 속에 안겨서 함께 간다. 바람 속에 있으니까 바람을 느끼기 힘들어서 배는 태풍의 눈에 들어온 것처럼, 조금 전까지 사납던 바람이 일순간 잠든 것처럼 조용해진다. 가까워지는 목적지의 풍경과 바다를 가르는 뱃전의 물길로 배가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나는 항구를 떠난 후 북서쪽과 북쪽으로 올라가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코스에서 연습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해변 가까이는 카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그들과 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에서 배를 돌렸다. 불어오는 바람의 왼쪽과 오른쪽을 거슬러 오를 때 나는 바람을 기준으로 같은 각도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는데 체감속도가 서로 달랐다. 내가 바람의 방향을 잘 못 읽었거나, 바람이 순간마다 변했거나, 조류의 영향으로 양쪽의 바람 양이 달랐을 수 있다. 첫 번째 원인이 가장 클 것인데, 아직 서툴러서 바람을 읽기 어렵다. 좌우 바람이 다른 게 와닿는 것은 지난번 연습에서도 마주친 문제여서 앞으로 집중해서 답을 찾아야 할 부분이다. 그 답을 찾으면, 내 항해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풍상 측으로 배를 돌리는 기술을 테킹taking, 바람이 불어 가는 방향, 풍하 측으로 배를 돌리는 기술을 자이빙jiving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테킹보다 자이빙에 집중해서 연습했다. 바람 부는 날 자이빙은 테킹에 비해 전복 확률이 높아서 조심해야 한다. 나는 속도 유지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돌리는 것에 집중했다. 덕분에 전복은 피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기록이 그렇듯 로그북은 지난 항해를 잘 살펴서 다음 항해를 대비하기 위해 쓴다. 다음 연습 때부터는 항해를 시작하기 전 그날의 바다를 미리 기록해두고 출발하는 습관을 만들어야겠다. 두 시간의 항해를 마치고 상륙하니 뭍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코치가 물었다.


한 번도 안 빠졌어요?

네, 한 번도 안 빠졌습니다.

바다 사람 다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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