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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Oct 09. 2022

여보, 그 생선을 사지 마오.

오늘은 항해일지 아니고 조행 일지

생선은 사 먹는 거 아니다.


상하이에 살았을 때, 집에서 생선요리를 해서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중국에서 바다와 면한 도시들을 제외하면 생선은 민물고기 요리가 훨씬 많다. 내 고향은 거제도. 민물고기를 먹을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내게 ‘생선’이란 ‘바다’였다. 식당에서 나오는 생선요리는 대부분 민물고기를 여러 양념으로 덮거나 진하게 끓여내는 방식이었다. 바다 해산물을 취급하는 큰 수산물 시장이 있었지만 가끔씩 가보면 좀처럼 눈에 드는 물고기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탁한 눈빛과 느린 움직임. 저건 먹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들. 그래서 제주 이주를 결심했을 때 싱싱한 해산물을 마음껏 먹겠다는 기대가 컸다. 그때쯤, 아내에게 말했다.


제주에서는, 생선은 사 먹는 거 아니야.


늦은 오후, 일과를 마무리한 뒤 간단한 낚시채비를 챙겨 가까운 바다로 간다. 두어 시간 낚시하면 먹을 만한 생선 몇 마리를 잡아서 그날 저녁 식탁에 올린다. 회가 될 수도 있을 테고, 구이나 조림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나와, 내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은 아내가 상상한 제주의 저녁 식탁이었다. 생선은, 잡아먹는 것이다.


제주에 와서 찌낚시를 배웠다. 어려서 아버지께 배웠던 민장대 낚시나 원투 낚시와 다른, 바닷속 물고기와 밀당을 해야 하는 낚시다. 이런저런 채비가 많이 필요하고, 날씨나 조류 등 바다 상황에 따라 대응방법이 달라야 해서 배울 것도 많고 경험치도 필요하다. 


냉장고를 비워두시오.


낚싯대를 들고 문을 나서는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은 어쩐지 못 미덥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내 출사표는 항상 같다. 냉장고를 꽉 채울 만큼 가득 잡아올 테니 냉동칸을 비워두라는 승전 예고! 매번 어림도 없는 결과표와 빈 고기통을 들고 돌아오지만 만선의 기대는 슬금슬금 다시 쌓여서 다음 낚시를 나갈 때쯤에는 또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어제 낚시는 정말 기대했었다. 북동풍이 강하게 불었으니 바람을 피해 서귀포 서쪽으로 목적지를 골랐고, 주말이라 사람들이 몰릴 테니 새벽도 오기 전 한밤중에 집을 나섰다. 새로 배운 카고 낚시는 꽝이 없다고 했으니 이번에야 말로 제법 잡을 것이다. 많이 잡으면 누구누구에게 몇 마리씩 나눠줄지도 다 생각했다. 


결과는 여지없었다. 나는 새우 썩는 냄새를 온몸에 바른 채로, 10시간 만에 빈 통을 들고 귀가했다. 이제 아내는 처음부터 알았다는 듯, 재미있게 잘 다녀온 것으로 충분하다고 밥을 차려주고 얼른 씻고 쉬라고 말해준다. 낚시는 내가 다니는데 아내가 도를 깨달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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