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에는 4.3을 비껴간 곳이 하나도 없다
마루야, 아침 일찍 나섰던 촬영길은 되돌아왔다. 안덕면에는 백조일손지지라는 묘지가 있다. 묘지군이라고 적는 것이 더 맞겠다. 4.3에 이어진 예비검속으로 졸지에 희생된 132명의 묘지가 그곳에 있다. 사살된 132명은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겹쳐서 던져졌고, 발굴 때는 이미 누가 누군인지 알 수 없어서 백 조상을 모신 한 자손이 되었다.
1959년에 그들의 이름을 함께 적은 큰 묘비를 세웠는데, 2년 후 박정희의 5.16이 벌어지자 얼마 안 가서 문제가 생겼다. 세력화를 두려워한 정권은 묘지의 집합마저 무서워했다.
묘를 이장하라!
그럴 수 없다. 누가 누구의 묘인 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옮기는가?
울담을 허물어라!
그럴 수 없다. 주변 마소의 침범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5.16에 앞선 4.19 혁명으로 당시 민선 이장이 있었는데, 이장은 경찰과 대치했고, 결과적으로 비석을 허무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렇게 깬 비석은 파편으로 땅속에 묻었다. 지금 묘지 앞에는 2000년경을 전후해서 발굴해 낸 일부가 아크릴 상자에 담겨 있다.
박물관이 완성되면 이 비석파편이 전시되고 그 옆에 조각조각의 사진이 걸릴 텐데 그게 이번 아빠의 작업이다. 파편은 비석면을 제외하면 울퉁불퉁해서 면을 잡아 찍는 것이 어렵다. 여러 방법을 고민하다가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모래 위에 올려서 균형을 잡기로 했다.
문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비석이 비에 맞으면 촬영이 어려워서 장비를 모두 준비한 채로 촬영은 연기했다. 오늘 너 태권도 데리러 못 간다고 했는데 갈 수 있겠네.
일정이 갑자기 붕 떴다. 비가 내리니 외부작업도 못 하고 자재를 사 올 수도 없다. 새 앰프를 연결해 본다. 어제 밤늦게 나가 사 온 것이다. 채소밭에 다녀온다는 아빠에게 엄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모르는, 그러나 듣기 좋은 음악을 튼다. 기분 탓일까, 기분 탓이겠지 아마. 음악이 썩 좋게 들린다.
에라, 모르겠다. 남은 우유로 라떼 한 잔을 내리고 나니아연대기를 편다. 잠시 동안 책이나 봐야겠다. 될 대로 돼라 그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