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제법 길게 마음에 두었던 프로젝트였는데 중간에 한참 멈췄었구나. 다시 쓰자고 파일을 열어보니 제목만 적어두고 채우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참이나 보인다. 차근차근 적어 내려 가야겠다.
지금 이 글은 새 작업실에서 쓴다. 며칠 전에 사진작업용 컴퓨터 시스템을 새 방으로 옮겼어. 이제 네 컴퓨터와 아빠 컴퓨터, 그리고 엄마 컴까지 모두 한 방에 있다. 우리는 이 방을 새 작업실로 부른다. 네 옆에서 네가 게임하는 것을 보며 아빠는 사진 작업을 하고 글을 쓴다. 이 환경, 너무 좋은데!! 잠자고 일어나서 바로 농담처럼
“출근할게.”말하고는 옆 방으로 오면 사무실이야. 일하다가 조금 쉴까 싶으면 퇴근한다고 옆 방으로 가면 그만이네. 본래 쓰던 사진관 2층 작업실은 프린트 전용 공간으로 바꾸려고. 어제 청소를 하려고 했는데 기티가 거기 박스 안에서 자고 있어서 다 못 했어. 제법 소리를 내며 청소하는데도 꿈쩍 않고 버티며 자더라고.
오늘 적는 책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두껍지 않은 소설책이다. 초록색의 표지.
사실, 사진관 작업실 테이블에 오래 올려둔 책이었어. 작업실 이사하면서 챙겨 왔는데, 읽다가 말았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에 앉아서 딱 펼쳤는데, 어디까지 읽었더라 하며 책갈피 넣어둔 곳부터 차근차근 찾다 보니, 이런, 다 읽은 책이네. 그럼 이걸 다 읽었는데 왜 결말이 기억이 안 날까? 결말도 결말이지만 다 읽었다는 사실을 왜 잊었을까? 오래된 책도 아닌데? 큰일이다. 책에 대한 기억이 점점 더 흐려지는 것들이 많아져. 잠결에 읽었나?
너를 위해 쓴다고 생각한 아빠의 책장.이지만, 어쩌면 아빠 스스로에게도 정말 필요한 작업일 수 있겠다. 이렇게 요약이라도 하고 또 책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부분들은 메모라도 남겨놓아야 될 것 같아.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마 첫 문장의 힘이 컸을 거야.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야기의 첫 문장은 신이 대신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가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란다. 단순한 문장 하나의 역할을 아득히 뛰어넘어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강력한 선언 같은 거라서 말이야.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문장은 들어봤을 정도로,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신선하고 강력하다.
엄마가 일어나셨고, 아빠는 곧 아침을 먹으러 가야 하니까 소설의 이야기는 간단하게 요약해야겠다. (기티도 방금 거실로 나갔다.)
이야기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첫 문장에 나왔듯이 그런 아버지가 죽었고, 그 장례식이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된다. 빨치산이 아주 가까운, 오래지 않은 역사 속에 그렇게 존재하는 단어였는지 아빠는 잘 몰랐다.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서 책을 읽으며 낯설고 또 신선했다. 한국 현대 소설 중에서 꼭 거쳐가야 할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도 그중에 있다. (부끄럽지만, 이건 부끄러워해도 될 것 같다, 아빠는 조정래의 소설을 아직 안 읽었단다.) 마땅한 것을 건너뛴 공백이 이렇게 드러난다.
글쎄, 적어는 둔다만, 네가 언제쯤에 무슨 이유로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생각해 보면 마땅한 때, 마땅한 이유가 분명하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더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건, 어떤 때든, 어떤 이유는 네가 첫 문장을 고민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연애편지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리포트일 수도 있겠지. 또 어쩌면 네 책이 될 수도 있고. 한 줄의 문장이 실로 얼마나 무겁고 큰 것인지, 그때 너는 알게 될까.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 2022 / 창비
아빠의 독서. 2024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