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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Sep 25. 2021

내가 도대체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면?

나의 소프트 스킬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보기

한국의 유교걸들은 이상하게도 잘하는 것을 잘한다 말하지 못합니다. 내가 한 일을 티 내면 너무 나대는 것 같고 거만한 사람이 되는 것 같죠. 누가 칭찬을 해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유 별 거 아닌데요 뭐.' '제가 무슨...' 대충 웃어넘기거나 말꼬리를 흐리기 일쑤입니다. 담백하게 '감사합니다.'라고만 대답해도 충분할 텐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화가 나더라고요. 조금만 튀어도 잘난 척한다, 나댄다, 손가락질받는 분위기에서 자랐는데, 20대 초중반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가 오자 온 세상이 갑자기 돌변합니다. 내가 얼마나 특별하고 대단한지 500자, 1000자로 내로 증명하라질 않나, 장점과 단점(을 빙자한 또 다른 장점)을 말하라질 않나... 이직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분명 내가 내 생각대로 일할 수 없게 하는 회사를 다녔는데, 다른 회사 면접에 가니 내가 주도적으로 일한 성과를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눈물이 났죠...


사회인이 되고 난 이후 여러 번 결심했습니다. 잘한 게 있으면 무조건 나 이거 잘했다고, 내가 이것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하고 다니겠다고. 노력이 좀 통했는지 어떤 사람들은 저를 '남 눈치 잘 안 보고 거침없다'라고 생각하고, 근데 또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 자신감이 없다'라고 보기도 합니다. 토종 한국 유교걸이 애써 후천적 자신감을 장착하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긴 한데요. 으흠. 뭐 그래도 전 좋습니다. 매 순간 자신 없어 보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말이 길어졌는데,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런 겁니다. 우리는 잘하는 걸 잘한다고 말하고 티 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일하고, 성과 내고, 험난한 사회생활하려면 그래야 해요. 이미 너무 쭈그리고 살고 있으니까 좀 너무한가 싶을 정도로 연습을 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근데 그러려면 내가 뭘 잘하는지 잘 알아야 하잖아요?


보통 저같이 전문직이 아닌 평범한 문과 출신 회사원, 특히 여성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잘하는 게 없는데?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러니 전문성이 없다고.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거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안다거나, 하다 못해 영어라도 원어민처럼 해야 그렇게 뽐낼 능력이 있는 거 아닌가?


근데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아요. 특별한 전공도 아니고 별다른 하드 스킬 없어도 다들 일 잘하고 돈 잘 번단 말이죠. (개발자만큼은 아니겠지만요 ㅎ) 요즘 세상에 꼭 학벌이 좋은 사람들만 잘 나가는 것도 아닌 거 같고요.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능력을 스스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분명히 내 강점이 있고, 지금까지 일하면서 키워온 나의 역량이 있는데, 한 번도 제대로 된 관심을 갖고 언어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었어요.


저 역시 ‘일하는 나’를 더 정확하게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특히 성과를 잘 내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나만의 무기는 뭔지, 그게 나의 전문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요. 커리어 고민은 끝이 없지만, 그래도 확실히 알게 된 게 하나 있어요. 일단 하드 스킬은 차치하고서라도 '소프트 스킬'만큼은 보다 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하드 스킬은 흔히 말하는 직무로 업무 수행에 필요한 기술을 의미합니다. 외국어 능력, 프로그래밍 툴 사용 등이 대표적인 예죠. 정량화가 비교적 쉽습니다.
소프트 스킬은 하드 스킬처럼 정량화하기 어렵지만 성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역량을 의미합니다.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팀워크, 협상력, 원만한 대인관계처럼 말이죠.

<커리어 공략집 : 역량 편 - 나의 직무 역량 파악하는 법>, 김지현 님의 글 - 퍼블리 (Publy)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다’가 아니고 ‘듣거나 본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핵심을 뽑아낼 수 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훨씬 명쾌하지 않나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 안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잖아요. 말을 수려하게 잘하는 것, 사람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잘 풀어내는 것, 대화에서의 주도권을 잘 잡는 것 등. 이 중에 내가 잘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뭔지 조금 더 파고드는 겁니다. 저는 말을 수려하고 유려하게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만, 대화 내용에서 핵심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데 강하고, 논의가 산발적으로 흘러갈 때 핵심 맥락을 잊지 않고 잡아낼 줄 아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보다 구체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면 나도 상대방도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자연스레 그에 맞는 상황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공허한 이야기가 아닌 생생하고 근거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프레이밍이 되어서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내 강점을 인지하고 점점 더 그에 맞게 행동해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의 강점을 강화해가는 거죠.


그럼 어떻게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과 언어를 찾느냐,라고 물어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1)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뻔하지만, 역시 글쓰기예요. 일기든, 업무 회고든, 개인적으로 하는 회고든 뭐든 좋지만 저는 '개인 회고'를 가장 추천합니다. 일기는 오늘 기분이 나빴다, 오늘은 좋았다, 이런 식의 감정 쓰레기통처럼 되기 쉽지만(...) 회고는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저는 개인 회고를 시작하고부터 제가 일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지 알게 됐고, 그리고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다면 다 까먹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소름이 돋곤 했습닏... 제가 하는 주간 회고 방식은 지난 브런치 글 일이 많고 산만한 사람의 일정 관리법 에 잘 나와 있어요.


2) 동료나 매니저로부터 받는 피드백을 잘 기록하고 저장해 두세요. 저는 운 좋게도 매니저와 매주 1:1 미팅을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점차 재밌더라고요. 그 시간만큼은 매니저가 온전히 저에 대해서 집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잘 이용해 보고 싶기도 했어요. 제가 잘하는 것, 부족한 것,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 저에게 기대하는 것... 굉장히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의미 있었던 것들은 기록해두고요.

매니저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동료들과도 협업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요. 이럴 때도 칭찬을 받으면 손사래 치는 대신 멋지게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고, 그 이야기들도 수집해 두세요. (말처럼 쉽지 않죠 네...)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일을 굴러가게 만드는지, 어떻게 성과를 내는지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요즘 틈날 때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는데요. (역시 수억 년이 걸리는군요 허허) 이 글도 그런 과정에서 시작됐어요. 뻔하고 재미없는 말들 말고 나에 대해서 뭘 이야기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 속에서요. 일단 지금까지는 아래와 같은 언어들을 찾았고, 이 공간에도 용기 내어 올려봅니다. 자신의 강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진짜 멋있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요.



저는 이런 걸 잘하는 사람입니다. (두둥)   

논의한 것, 또는 듣거나 본 것을 일목요연하게 글 또는 말로 정리하고 핵심을 뽑아낼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모호한 일을 시작할 경우, 먼저 대화를 이끌거나 업무를 정리하여 주도할 수 있다.

논의가 더 좁혀지거나 확장될 수 있도록, 적절한 질문을 하거나 아젠다를 던질 수 있다.

질문과 문제 제기를 많이 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되게 만드는’ 방향을 찾는다.

아주 창의적인 아이디어보다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다.

함께 만든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기억하고 지키려고 한다.

나의 감정이나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이 높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기보다 그다음을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끝까지 해보고 스스로 책임진다.


언젠가는 지금 만들고 있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해서 브런치에 올릴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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