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사시사철 발굴중이다. 특히나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 이후엔 월정교, 반월성 등 문화재 복원과 관련된 조사가 더더욱 빈번해졌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곳이 바로 쪽샘지구 발굴이다.
쪽샘지구는 대릉원 바로 옆 동네로 동네 초엽에 우물이 있어 그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경주 여행하면서 한번쯤은 들러보았을 유명한 쌈밥집이 많은 곳이지만 사실 이 곳은 4~6세기 신라 왕실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최근 조사에서도 완형에 가까운 갑옷 등 수많은 유물이 발굴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쪽샘지구의 고분들을 조사한 후 대릉원과 연결해서 거대한 고분공원을 만들 계획이란다. 그래서 누구는 이를 ‘한국의 룩소르’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나는 기본적으로 고분 주변환경을 정리해서 고분공원으로 단장하는 것에 찬성이다. 대릉원과 동시대의 유적인데 인위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주변에 들어선 가옥들 때문에 난삽해보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다. 오래된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쪽샘지구의 골목길들이 사라진다니 더욱 아쉽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16년 2월 어느 비오는 주말에 쪽샘지구에 들렀다. 갈 때마다 조금씩 사라지던 한옥은 거의 철거가 된 상태였다. 당연히 그 미로처럼 얽혀있던 골목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간간히 남아 있는 한옥들에는 고물을 찾으러 다니는 분들만이 오갈 뿐.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경주에서 사람사는 냄새나는 골목길은 황성동만 남았다.
휑한 공터 한편엔 발굴조사를 기다리고 있는 무덤 한 기가 서 있었다. 잔디를 제거한 봉분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왜 이리 낯설고 어색한지... 조사가 끝난 구덩이는 파란 천을 덮어뒀다. 비 올 때 안으로 물이 고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겠지. 중간중간 모래주머니로 고정해 놓은 모습이 설치미술을 보는 듯 하다.
이러저리 헤매다 보니 월성동사무소 쪽으로 가게 되었다. 여긴 아직까지 남아있는 골목이 있다. 반갑다. 벽화도 그려져 있어 정감있고. 한옥을 개조한 까페에서 커피도 한 잔. 운치있다. 야외 2층에도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텅빈 쪽샘지구를 살펴볼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시간이 맞아 쪽샘지구 발굴 전시관 안에 갔다. 전시관은 조사 중인 고분 위에 둥근 가건물을 씌운 형태이다. 그리고 2층에 난간을 둘러 관람객들이 발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고분 발굴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 무척 흥미로웠다.
신라 특유의 무덤 형식인 적석목곽분(돌무지덧절무덤)은 무덤을 조성하고 위에 큰 돌들을 올린 다음(적석) 다시 흙으로 덮어 마무리를 한다. 조사를 위해 절개한 단면에서 적석목곽분의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저러니 다른 무덤들과 달리 함부로 도굴이 불가능했던 거겠지. 중간에 함몰된 부분이 확인되는데 나무로 만든 관이 세월이 흐른 후 썩어 주저앉으면서 위쪽이 다 무너져 내린 부분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봉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호석이 명확하게 보인다. 관리자분께 여쭤봤더니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5세기 전반기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적석을 걷어내지 않은 걸로 봐서 무덤 내부까지는 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듯 하다. 얼마나 많은 유물들이 저 안에 숨어있는 걸까. 그리고 그 유물들이 전해줄 그 옛날 신라시대의 비밀은 또 어떤 내용일까.
나오다 출출해서 팔우정 해장국 거리로 갔다. 사실 해장국 거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겨우 3~4집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손님도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예전 경주에 이모가 사실 때는 참 자주 왔었는데. 아버지랑 이모부들이 술 거하게 드시고 다음날 해장은 항상 이곳에서 하셨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 옆에서 맛도 모른 채 후후 불어 먹으면 나도 어른이 된 것 같아 꽤나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10년 전쯤 아내와 같이 경주에 왔을 때 들렀다. 썩 내키지 않아 하는 아내에게 경주에 오면 당연히 팔우정 해장국집에 가야 한다고 강제로 들어갔다. 아내는 반도 못 먹고 남겼다. 이게 뭔 맛집이냐며 면박도 좀 받았지, 아마. 내 입에도 별로였다.
오랜만에 들어갔더니 진한 멸치 국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손님은 없고 할머니 두 분이 TV를 보고 계셨다. 항상 그렇듯이 묵해장국을 시켰다. 오래된 맛이다. 전통의 맛이라기보다 그냥 더 진화하지 못하고 멈춰버린 듯한 맛.
먹고 나오니 해장국집 사이로 인도카레집이 보인다. 나머지 식당들은 얼마나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쪽샘지구의 오래된 한옥들처럼 얼마 뒤면 다시 보기 힘들 듯 하다. 뒤돌아 사진을 찍으려다 쓰레기 버리러 나오신 찬모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나 오래된 눈빛. 괜시리 죄송스러웠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왜 이리도 짠하고 애잔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