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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Mar 19. 2017

포항에 다시 가야 할 이유


  고향이 대구인데도 포항에 제대로 가 본 적이 없다. 친구 결혼식 때문에 한두 번 들렀고, 죽도시장에는 몇 번 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겨울엔 과메기 먹으러 가보고 싶었다. 택배로도 시킬 수 있지만 현지에서 먹는 맛에 비할 바가 있겠는가. 누가 그랬지. 추운 겨울 칼바람 들이치는 구룡포 구석진 포장마차에서 먹는 과메기 맛이 최고라고.

 



  그렇게 맘만 먹고 있다 얼마 전 겨울여행으로 포항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죽도시장으로. 죽도시장은 언제 가도 좋다. 규모가 크고 사람도 많다. 활기 넘친다. 해산물의 종류며 때깔이 다르다. 현지는 뭐가 달라도 달라.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눈에 띄는 건 문어. 제주시 동문시장은 그 큰 은갈치의 빛깔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죽도시장은 문어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마침 지나가는데 가게 사장님이 아이만한 문어를 잡고 있었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우리뿐이 아니라서 궁금한 것 못 참는 어르신 한 분이 물어봤다.


“보소. 그 문어 몇 키론교?”

“20키로.”

“20키로! 그럼 얼맨교?”

“45만원.”


  문어 크기도 놀랍고, 가격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건 그 거대한 문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처리해서 끓는 물속으로 집어넣는 모습. 역시 현지가 아니면 못 볼 광경이야. 근데 잠깐. 우리 꼬마 몸무게가 이제 20키로 아닌가.

사투


  점심 때라 수제비 골목으로 갔다. 뽀얀 김 사이로 사람들이 저마다 후후 불어가며 열심히들 먹고 있었다. 우리는 반반 섞은 칼제비를 시켰다. 예전 기억. 경주가려다 동문시장에 잠깐 들렀다. 배고파 찾다보니 수제비 골목이었다. 추위에 벌벌 떨다가 먹으니 온몸이 스르르 녹는 듯 했다. 행색이 영 볼품없었는지 주인 아주머니가 아무 말도 안하시고 한 국자 더 퍼주셨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듯 했다. 멸치 국물에 포항초를 넣고 끓인 칼제비는 여전히 맛있었다.


  나와서 걸었다. 역시 포항의 겨울은 과메기다. 거의 대부분의 건어물 가게에는 과메기 시식코너가 있었다. 와이프랑 꼬마가 환장을 하고 먹는다. 초장도 안 찍고 먹는다. 난 그렇게 먹으면 좀 비리던데.


“딸,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냐? 그렇게 맛있어?”

“응. 꽈배기 맛있어. 젤리 같아.”

“꽈배기? 아, 과메기.”

“응. 꽈배기.”


  그래. 꽈배기 많이 드시라.

청어 과메기는 처음 본다

  과메기도 많지만 반건조 가자미도 흔하다. 붉디붉은 알을 품은 잘 말린 가자미를 보니 절로 군침이 돈다. 저거 구워 먹으면 진짜 맛나겠다. 택배도 된다고 해서 한 소쿠리 샀다. 이걸로 한동안 반찬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저녁에 먹을 과메기 사러 해구식당으로 갔다. 해구식당은 포항에서 처음으로 과메기를 팔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우연히 알게 되어 한 번 갔었는데 비린내 못 참는 나도 선선히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게다가 같이 나오는 물미역이 어찌나 싱싱하던지. 그런데 얼마 전에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네. 이거 또 기다리기만 하다 못 먹는 거 아냐.


  다행히 조용했다. 실내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예나 지금이나 야시시한 모델이 서있는 달력도 보여 반가웠다. 그런데 유명세를 타고 있긴 한 모양이다. 홀에서는 못 먹고 포장만 가능하단다. 내가 주문한 이후로도 들어오는 손님들이 꽤나 많았다. 할머니 사장님이 많이 피곤해 보이셨다.

 



  다음 코스는 호미곶. 빨리 가려면 구룡포까지 고속화도로를 타고 가면 되는데 시간도 많고 해서 영일만을 끼고 도는 코스를 선택. 예상 밖으로 경치가 훌륭하다. 오랜만에 보는 검푸른 동해는 절로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그 너머 보이는 포스코도 바다랑 잘 어울리고. 야경이 그리 멋있다는데 숙소를 구룡포로 잡아 못 보는 게 아쉽군.


  사는 곳이 대전이라 항상 대천이나 안면도 같은 서해바다만 보다가 동해바다를 보니 시각적으로 충격이다. 더 푸르고 더 깊고 더 넓다. 절로 정호승 시인의 <고래를 위하여>가 생각났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그래 이 정도는 되야 고래가 살만하지. 아마 황해라고 명칭을 지은 이는 평생 동해바다만 보다가 처음으로 서해바다를 본 경상도나 강원도 사람이 아니었을까.

장쾌하다


  정작 호미곶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워낙 자주 뉴스에 나오는 곳이라 첨 보는데도 이미 여러번 본 것 같았다. 바닷바람이 심하게 불어 꼬마 감기 들까봐 걱정이고, 사람도 너무 많고. 그래서 얼른 사진 찍고 등대박물관으로 갔다. 의외로 전시가 괜찮다. 등명기를 종류별로 시기별로 모아서 전시하고 있었는데 기계에 관심있는 분들은 무척 좋아할 듯하다.

 



 그리고 구룡표로. 온 동네가 대게 찌는 솥에서 나는 연기로 자욱하다. 숙소로 올라갔다. 해질 무렵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겨울항구는 역시나 낭만적이다. 해구식당에서 사온 과메기를 꺼냈다. 씹으니 부드럽고 고소하다. 기름기 많은 생선이라 매콤한 초장에 찍어서 김에 싸먹으니 환상의 궁합이다. 여기에 소주가 빠질 수 없지. 집에서 공수해 간 한라산 소주 한잔씩. 근데 너무 맛나게 먹다보니 사진 찍는 걸 깜빡했다.

겨울 항구


  다음 날 아침, 커텐치고 자느라 일출을 못 봤네. 아쉽다. 얼른 씻고 대게 경매장 구경갔다. 잡아 온 대게를 오와 열에 맞춰 정리하는 아저씨들의 손놀림이 장난이 아니다. 중개인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물건을 구하려는 모습이 치열하다. 괜히 사진기 들이댔다가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 몰래 몰래 찍었다. 다 보고 나오는데 아내가 옆에서 슬쩍 묻는다. “우리 점심에 대게 먹을까?”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로 갔다. 구룡포 앞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서 수산자원이 어마어마했다네. 이를 알아차린 일제가 1920년대에 항구를 개항하자 최적의 어업기지가 되었다. 이후 수산업에 종사하던 많은 일본인들이 건너와 정착했고. 구룡포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엔 진짜 없는 게 없었다고 한다. 극장도 있었다고 하니 말 다했지 뭐.


  계단을 올라가 옛 신사 주춧돌이 있는 곳을 지나니 과메기 문화관이 보였다. 별 기대 안하고 갔는데 여기 장난 아니다. 특히나 아이들 체험할 수 있는 게 많고 잘 되어 있다.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캔해서 큰 스크린에 나오게 할 수도 있고, 플라스틱 공으로 화면에 나오는 물고기나 자동차 등을 맞출 수도  있다. 하여간 너무 괜찮다. 비싼 돈 주고 들어가야 되는 키즈까페보다 백만배는 훌륭하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 있는 집은 꼭 들러보시길. 엄마 아빠에게 꽤나 긴 휴식시간이 주어질 테니까. 그때는 4층 커피숍으로 가시라. 통 유리창으로 보이는 동해바다의 경치가 기가 막히다. 커피는 또 왜이리 맛있는거야.

커피가 절로 맛있어지는 풍경


   점심으로 대게 배부르게 먹고는 일본인 가옥거리를 걸었다. 유카타를 입고 걸어다니는 젊은 사람들도 있네. 대여해 주는 가게가 있나 보다. 딸이 갑자기 내 소매를 붙잡고 귓속말로 말했다.


  “아빠, 일본 사람들이야, 일본사람.”


  제일국수공장으로 갔다. 원래 구룡표에는 국수공장이 꽤 많았는데 다 문닫고 이 집만 남았다고 한다. 작년인가 TV에서 이 공장 뒤뜰에서 해풍에 국수를 말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참 인상적이었지.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이미 다 걷어버렸네. 이런... 혹시라도 국수 말리는 거 보시려면 오전에 가시라.


    두 묶음 사서 나와 보니 한 식당 앞에 사람들 줄이 한참 길다. 가까이 가보니 국수집이다. 잔치국수집인데 30년전부터 제일국수공장 국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TV에 한번 나온 후부터는 저리 줄이 길어졌다고 하네. 저런 모습을 현지분들이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찐빵이 유명한 철규네 분식갔는데 이미 다 팔렸단다. 역시나 매스컴의 힘인가.




  예상보다 훨씬 더 알차고 재밌었던 겨울여행이었다. 근데 좋은 만큼 아쉽다. 영일만에서 포스코의 야경을 못 봐서. 해풍에 국수 말리는 모습을 못 봐서. 철규네 분식에서 찐빵을 못 먹어서. 구룡포의 일출을 못 봐서. 이래저래 겨울에 포항에 다시 갈 이유만 늘어났다.




  지난 주 제일국수로 골뱅이 소면 해 먹었다. 국수가 쫄깃하고 힘이 있다. 비빔국수 해먹기 딱이다. 이 국수 다시 사기 위해서라도 또 포항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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