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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Oct 04. 2019

가족여행 #2

  둘째날 오전, 불국사 들렀다 감은사지로 갔다. 네비게이션 확인해보니 불국사 앞에서 감포로 가는 새로 생긴 길이 있었다. 토함산을 완전히 가로 지르는 길이었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니 우악스러운 한수원 본사가 보였다. 이 건물 하나 때문에 그 긴 터널을 뚫은 거야? 곧이어 추령계곡을 넘어오던 예전 길과 합류하는 것 같은데, 그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길이 넓어 감은사지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가기는 편해졌지만 예전의 그 정취가 사라져 아쉬웠다. 

               

  그럼에도 ‘그 탑’은 그곳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어찌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감은사탑은 여전히 감동적이었다. 딸은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신기한 듯 탑을 바라봤다. “아빠, 이 탑 진짜 멋지다!” 나는 탑 뒤 당산나무에 걸터앉아 이 위대한 석탑과 탑 주변을 뛰어다니는 딸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위대한 탑
소녀와 탑


  그리고 이견대로 향했다. 세식구가 돗자리깔고 김밥을 먹었다. 김밥이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엄마와 딸이 함께 대왕암을 바라보는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오래전부터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 도리어 비현실적이었다. 낯설면서도 기뻤다. 감사했다.                   


Thanks, guys!


  동해구와 고유섭 선생 비석을 보기 위해서 횟집타운 가는 길로 내려갔다. 그런데...고유섭 선생 비석 옆에 몇 기의 비석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었다. 제자들의 비석이었다. 진홍섭, 황수영, 정영호. 고유섭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아 한국 미술사의 기틀을 세웠던 기라성같은 학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사제동행의 아름다운 모습이라 흐뭇했지만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씁쓸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

  

마지막 코스는 대왕암. 동해 용, 감은사지 금당터 아래의 구멍, 만파식적. 감은사에서 이견대를 지나 대왕암에 이르는 여정은 먼 길을 달려온 여행객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푸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5월의 대왕암은 나들이 온 가족들로 왁자지껄하다. 딸은 철 이른 계절임에도 바다에 뛰어들어 하나뿐인 나들이옷을 적시며 즐거워하고 있다. 옆에서 이를 바라보는 엄마는 마뜩찮은 마음에 잔소리를 하지만 들은 체 만 체다. 갈매기들은 무엄하게 대왕암에 걸터앉아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소녀와 동해

 



 경주시내로 돌아와 ‘오늘은’ 서점에 갔다. 이곳에 가게 된 건 사연이 길다. 몇 년 전 동네에서 옥상텃밭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옆 텃밭의 P씨를 만났다. 하루는 연우와 토마토를 따러 갔는데, P씨가 남자친구인 K씨와 잡초를 뽑고 있었다. 딸이 젊고 잘 생긴 오빠를 보고 수줍게 웃었다. 이런, 질투나는데...         


  그리고 이사를 하는 바람에 그 두 사람과는 인연이 끊겼다. 새로 자리잡은 작은도서관이 있어 아내와 딸이 자주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관장님이 경주에 있는 ‘오늘은’ 서점에 다녀왔다가 그 주인 부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가 들어보니 영락없이 P씨와 K씨였다. 그래서 옛날 사진을 보여주니 두 사람이 맞다며 얼마 전 결혼하고 경주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게다가 K씨는 마을도서관에서 1년 넘게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참 사람의 인연이란...        

      

  ‘오늘은’ 서점은 경주역 뒤의 오래된 동네에 있었다.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다니. 황리단길이 뜨기 전 천마총 옆 동네가 딱 이런 분위기였지. 약도를 보고 찾아가니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다. 옛날의 이모네와 어쩜 이리도 똑같을까. 반들반들한 마루바닥까지도. 반가웠다.      



  다행히 P씨와 K씨는 딸의 얼굴을 기억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부부는 예전 그대로였다. 조용하고 차분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예전 같이 텃밭했던 일과 경주에 자리잡게 된 사연, 이사간 마을에서의 우리 가족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아내는 책을 보고, 연우는 서점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놀고, 나는 K씨와 마루에 나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눴다.    


   

  K씨는 마을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우리 마을에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여의치 않아 경주에 내려왔다고. 예전엔 나도 그렇게 경주에 살고 싶었는데 이루지 못하고, 지금은 K가 살고 싶어했던 마을에 살고 있고. 이상하게 겹치면서도 어긋나는 인연인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K씨는 다양한 독서모임도 하면서 우리마을의 도서관처럼 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귀한 곳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엔 5월 오후의 밝은 햇살이 가득했고, 꽃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오후 늦게 서점을 나섰다. P씨와 K씨가 마중을 나오며 다음에 경주에 오면 또 들르라고 했다. 연우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서로 웃었다. 한옥 한 쪽을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는데 다음엔 여기서 머물면 좋겠군. 대문을 나와 걷다 돌아보니 두 사람이 집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가족여행 마지막 날, 동부사적지대에 차가 너무 많았다. 아내는 박물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딸과 함께 계림으로 갔다. 딸이 물었다.      


“아빠, 금궤가 어느 나무에 걸려 있었어?”

“글쎄....  아빠도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오래된 나무들 중 하나겠지.”   



  딸이 성덕대왕신종을 보고 싶다고 했다. 반월성을 지나 박물관까지 한참을 걸었다. 날씨가 더워 걱정을 했는데 딸은 씩씩하게 걸었다. 만약 나와 아내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짜고 왔다면 저럴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딸은 이번 경주여행을 온전히 자신의 여행으로 여기고 즐기고 있었다. 훌쩍 큰 키만큼이나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덕대왕 신종 앞에서 이른 더위로 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활짝 웃는 딸의 모습은 비천상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뭉클했다.               




  마지막 행선지는 당연히 진평왕릉. 사람이 꽤나 많았다. 약간 김이 새는 느낌. 이곳은 진짜 나만이 알고 사랑하는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었는데. 그래서 딸에게 비밀을 이야기하듯 이곳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진평왕릉 입구의 그 잘생긴 나무들은 푸르고 푸르렀다. 아내가 딸 손을 잡고 걸어보라고 했다. “소원이었잖아.” 딸의 손이 따뜻했다. 진평왕릉 앞 나무그늘 아래 돗자리를 폈다. 아내는 쉬고, 나는 딸과 부메랑을 던지며 놀았다. 그렇게 경주 가족여행이라는 오래된 나의 로망도 완성되었다.      





돌아오는 차 안, 딸이 보리빵을 먹으며 말했다. “아빠, 다음에 또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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