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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 누워서 유튜브 검색하다 김민식 PD의 인터뷰를 봤다. 반가웠다. 직업적인 이유로 그의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었고, 크게 감명받았다. 그래서 영어회화나 실용영어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기초 영어 회화를 함께 외우기도 했다.
반가운 마음에 보다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1년에 200권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쓰고, 그리고 그걸 블로그에 올린다고 즐겁게 이야기하셨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https://www.youtube.com/watch?v=qea3am8Fl1Y
생각해 보면 나도 책 꽤나 많이 읽었다. 1년에 만화 포함해서 100권을 채운 적도 있었고, 실크로드에 미쳐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관련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기도 했다. 그리고 서안 지나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세계여행을 계획하기도 했고.
글도 많이 썼다. 텃밭 농사, 경주의 문화유산, 그리고 책 서평 등등. 악착같이 썼다. 아내와 어린 딸이 잠들면 몰래 나와 글을 쓰고, 어울리는 사진을 고르고, 다시 수정하고. 공강 시간에도 쉬지 않고 썼다. 그렇게 해서 브런치에 올린 글이 꽤 되었다. 참, 그러고 보니 사진도 참 많이 찍었었지.
그런데 지금은, 시간 나면 유튜브만 보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변명하자면 바빴다. 학교에서 담임으로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은 디폴트 값인 데다가, 학년부장까지 맡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아니 쉬지 않으면 월요일 출근부터 몰려드는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글쓰기보다 소중했다. 고 3 담임이 되어 아이들 대학 보내려고 영혼을 갈아 넣어 생기부 쓰고, 자소서 검토하고, 면접 준비했다.
생활이 안정된 것도 한 원인이겠지. 근교에 근사한 집을 사서 이사를 하고, 딸도 잘 크고, 운 좋게 정규직이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게다가 글 한 편 쓰는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다. 주제를 정하고, 머릿속으로 글의 얼개를 구성하고, 쓴 글을 읽고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은 즐거웠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걸작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서일까. 기갈 들린 사람처럼 읽던 책도, 미친 듯이 쓰던 글도 시큰둥해졌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유현준 교수가 그랬잖아.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이 집에 와서 멍하니 TV를 보는 것은 그 옛날 고대인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늘도 살아남았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모닥불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그렇게 나는 주말마다 나태와 무위를 만끽했다.
맘 속으로는 알고 있었나 보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피곤하고 쉬고 싶다는 그 모든 이유가 다 구차한 변명이었다는 것을.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MBC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했을 때 김민식 PD는 현업에서 배제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을 못하게 되자,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고 했다. 그렇게 엄혹한 시절을 극복했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내가 그 사람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좀 더 읽고, 그냥 쓰기로 했다. 읽고 싶은 책은 여전히 많다. 도서관 가면 언제든 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유튜브 그만 보고 책을 더 읽어야겠다. 그리고 뭐 그리 좋아질 것도 아닌데 그냥 맘 가는 대로 편하게 글도 써보자.
나도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너무 강박을 갖지는 말자. 그래도 이렇게 벌써 한 편 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