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비 Sep 15. 2022

감정을 소유할 수 있다면 좋을까

심리상담자의 마음책방#7 김초엽의 감정의 물성


감정을 사고 파는 사람들


만약에 감정을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기꺼이 돈을 지불 하실 건가요?

어떤 종류의 감정을 사고 싶으신가요?


이 소설은 이런 흥미로운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회사는 감정을 조형화한 제품을 판매하는데요. 이를테면 예쁘장한 돌에 ‘공포체’, ‘증오체’ 란 이름을 붙여 파는거지요. 침착의 향수, 설렘 초콜릿 같은 것도 있어요. 이런 제품들은 실제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를 끕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연인인 보현도’ ’우울체’ 를 구입한 것을 보며 궁금증이 생기지요. 왜 그런 물건을 굳이 사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하구요. 특히, 행복, 침착함 같은 누구나 원하는 긍정적인 감정이 팔리는 건 그래도 이해해볼 수 있을 텐데, 부정적인 감정들조차도 잘 팔린다는 게 이해가 되지를 않아요. 


대체 돈을 주고 우울해지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제품들이 순전히 사람들의 착각이나 그렇다고 믿는 데서 기인하는 플라시보 효과는 아니었어요. 일종의 화학물질들을 배합한 마약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소유한 사람에게 정말로 해당 감정을 느끼게끔 하는 효과가 있었지요. 어쨌든,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사람들은 왜 감정을 소유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흔히 거부하고 불편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정적 감정 조차도 인기를 끄는가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감정을 소유하고 싶은 심리


소설 속 사람들은 저마다 대답을 내어놓는데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주인공의 회사 동료의 주장입니다. 사람들은 소중한 추억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어하고, 나만의 고유한 사색의 결과를 글로 남기고 싶어하며,  말 잘듣는 siri 보다 내가 만지고 껴안을 수 있는 애착의 대상을 필요로 하는 걸 보면, 감정도 실체가 있는 무언가의 형태로 갖고 싶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끌림일수도 있겠네요. 


처음 제품을 기획하고 재조한 개발자의 말도 들어보면,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맞아요. "넌 왜 그렇게 우울한 노래만 찾아서 듣냐" 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 저로써는 ‘우울 라인 패키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요. 어쩌면 감정에도 취향이란 게 있어서, 자신이 더 좋아하는 감정의 상태가 있는 거  아닐까요? 그게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여겨질지라도, 누군가는 좋아할 수도 있지요. 제가 저의 우울을 종종 반기고 즐기는 것처럼요.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연인, 보현은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보현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아요. 감정에 실체가 없음이 때로는 참 헛헛하지요. 나는 생생하게 느끼는 이 감정을 꺼내어 보여줄 수도 없고, 그래서 이해받기도 힘들 때가 있어요. 나 조차도 내 감정을 잘 모를 때도 부지기수지요. 그럴 때 여기 이게 내 우울이야, 하고 보여줄 수 있고 나도 내 감정을 바라보고 감각할 수 있다면 더 위로가 될까요.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면 좋을까 



엉뚱한 상상력이지만, 참 재미있게 읽은 소설인데요. 


본래 감정은 물성(물질이 가진 특성)이 없죠. 그래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무엇으로도 감정이 있음을 증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저 느껴질 뿐이지요. 


이런 감정에 물성을 부여하고 싶다는 건, 그리고 그 감정을 소유도 하고 싶다는 건 결국 내 안의 모호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이리뒀다, 저리뒀다 치워버릴 수도 있는 물건처럼 통제하고 싶은 욕구의 반영 아닐까요? 


하지만 감정은 통제되지도 않고 통제해서도 안 됩니다. 감정에 대한 경험은 오직 나에게 어떤 감정이 있다는 걸 잘 관찰하며 알아차리는 것과 그 감정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 바탕되어야 하지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저희 블로그의 찰빵심리님 글에 많으니 읽어보세요. 넘나 추천하는 글!!)


혹은 아무리 노력해도 설명하고 소통하기 어려운 감정을 실재하는 무언가를 통해 이해받고 싶은 심리가 감정을 갖고 싶게 만드는 걸지도요. 이게 내 감정이야, 이렇게 생겼다고, 좀 봐줘! 라는 처절한 외침이랄까. 그만큼 나의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제대로 알고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감정에게 말걸기


감정을 잘 경험하고 이해하기 위해, 저는 우리의 오감이 아닌 직관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해보시길 추천드려요. 어릴 때 우리는 상상 속의 친구를 가지고 있곤 했지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친구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려내고 말을 걸고 이름을 붙여보기도 하구요. 


감정도 때로는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자꾸궁금해하고 들여다보며 말을 걸면 제 관심에 응해주더라구요. 마음이 허전한 날에는 '외로움 너구나. 니가 또 왔구나' 하게 되기도 하고,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뭣때문인지 질문하고 대화하다 보면  '지금 나의 불안은 00 때문이야' 라고 더 선명하게 말해주기도 하구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저는 감정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요. 이것과 저것 사이에 있을 때, 온전히 나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심리적 고요함을 찾아 한가지씩 가만히 마음에 떠올려보곤 해요. 마치 영화 스크린에 장면을 띄우듯이. 그러면 내 마음에 자연스레 올라오는 감정이 있고, 어떤 이성적 판단 보다 그 감정을 존중하고 따라가면 대개 후회가 덜한 선택을 하게 되더라구요. 


언젠가 상담을 하다가 자신의 감정을  색깔로 이미지화해서 기억한다고 말하신 분도 기억이 나는데요. 가령 오늘 마음은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빛', 지금 감정은 '희끗희끗한 그레이' 이런 식으로요. 그것 또한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그 분만의 직관적인 방식이었겠지요. 



이렇게 감정을 물질적인 형태를 가진 무언가로 가질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충분히 감정을 경험하고 나의 감정과 소통할 수 있으며, 내 안의 감정의 힘을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말을 걸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내 마음이 궁금할 때는 가만히 지금 내 맘에 어떤 감정이 찾아왔는지를 눈을 지그시 감고 한 번 알아차려 보세요. 그 감정들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보셔도 좋구요. 감정을 사고 팔거나 소유함으로써 통제하는 것보다 훨씬 손쉬운 방법이지요? 그러니까 어린왕자도 누누히 말했잖아요. 정말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요. :)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고통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