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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홍 Oct 27. 2022

사일런스 얼롱 : 기적 같은 적막

원데이 원무비 2호 : <레벤느망>

사일런스 얼롱(silence-along) : 기적 같은 적막


밤에 뭔가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단 잠 자체를 늦게 자는 편입니다. 특별한 스케쥴이 없는 이상, 늘 새벽 2-4시 사이에 침대에 들어가 (유튜브 보다가) 잠을 청한지 오래되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미라클 모닝은 저에겐 진짜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기적이며, 대신 제가 믿는 것은 ‘역사는 밤에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밤이 되어 어둑해지고 주변의 소음도 좀 줄어들어야 뭔가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는 조금 변명이고, 그냥 낮에 놀거 다 놀다가 밤이 되어버렸으니 그제야 뭔가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밤은 저에게 특별합니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밤에 저 개인의 역사에 남을만한 뭔가를 한 게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저의 페이버릿 밤 액티비티는 혼자 심야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낮에는 다른 일들을 하다가, 일부러 밤 10시, 11시가 넘은 시간에 상영되는 영화를 골라 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영화관이 제가 딱 좋아하는 상태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런 영화관에 들어갈 때는 입구에서부터 바로 느낌이 옵니다. 아직 아무도 입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그 두꺼운 문을 열며 입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을 걸어가듯 어두운 복도를 거쳐 스크린을 맞닥뜨릴 때까지 느껴지는 그 고요함. 나와 영화가 내는 소리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그 공간에서, 저는 준-공공재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영화관의 비경합성에 대해서 의심을 하곤 했었습니다. 타인의 영화 관람은 분명 내가 볼 영화에 털끝만큼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 사람이 내는 소리, 혹은 내 시야에 들어온 그 사람의 머리, 아니 그 사람이 내 뒤에서 정말 상영 내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영화를 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자체로 영화 관람에 영향을 받는 저로선 그 의심을 멈출 수 없었고, 그래서 운 좋게 큰 상영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게 될 때면 영화 자체의 재미를 떠나 그냥 하염없이 만족스러웠던 적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영화 자체도 후하게 느껴져서 별점을 적어도 0.5개 정도는 올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시는 분들이라면 저와 비슷한 경험을 종종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어둡고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영화관에서 감각을 차단당한 채, 정말로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어 말 그대로 오감이 곤두선 채로 영화에 집중을 하게 되는, 그런 기적 같은 경험을요. 이 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영화는 그런 상영 조건이나 타이밍과 상관없이, 그러니까 영화관이 정말 거의 꽉 찬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기적과 같은 적막을 느끼게 해준 영화입니다. 오드리 디완 감독의 <레벤느망>(L’evenement)입니다.



<레벤느망>에 관한 간단 정보를 먼저 알려드립니다. 프랑스 영화입니다. 작년(2021년) 9월에 열린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은 봉준호 감독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그 해 자신이 본 베스트 영화 목록에 이 영화를 넣기도 했습니다. TMI 하나. 저 또한 이 영화를 2022년 베스트 영화 목록에 올릴 확률이 높습니다. TMI 둘. 베니스 영화제의 은사자상인 감독상과 심사위원대상은 각각 <파워 오브 도그>(제인 캠피온)와 <신의 손>(파올로 소렌티노)이 받았습니다. 둘 다 넷플릭스에서 관람 가능하지만, ‘넷플릭스 영화’ 같지는 않은 작품입니다. 굳이 넷플릭스 이야기를 한 이유는 <레벤느망>은 국내에선 왓챠에서 관람이 가능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레벤느망>만큼은 정말로 영화관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웬만해선 상영관을 잘 안 따집니다. 아이맥스도 잘 가지 않습니다. 스크린 크기나 사운드의 퀄리티 차이를 잘 못 느낍니다. 제가 잘 못 느끼기에 실제로 유효한 차이가 있기는 한 건지, 세상을 또 한 번 의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반면 민감한건 앞에도 말했듯 다른 관객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는 것은 정말 못 참겠고(하지만 항상 참았고), 핸드폰 불빛이나 늦게 입장하는 사람들, 아니 그냥 다른 사람들이 내는 크고 작은 소음 같은 것들에 민감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다 사정이 있으셔서 그러시는 거겠죠. 저 또한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을 수도 있는 것이구요. 그래서 되도록 심야 영화를 보는 것이고, 그것도 아니면 적절한 방법을 찾아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렇게 사람을 믿지 않는(?) 제가, 방해받을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벤느망>을 반드시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영화는 절대 멈추거나 중도 관람 포기를 해서는 안 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앞서 말씀드린 기적 같은 적막,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던 모두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절대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게 느껴졌던 그 영화관의 분위기를 제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레벤느망>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20대 초반 대학생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이름은 ‘안’입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안은 임신중절을 원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인 1960년 초반의 프랑스는 그것을 어떤 이유로도 허락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범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을 강력히 원하는 안은 결국 위험한 길을 택합니다. 혼자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임신중절을 해내려는 것입니다.


오드리 디완 감독은 집요한 안을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이야기만 들으면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영화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레벤느망>의 특별함은 이 집요함들에 있습니다. 일단 영화의 모든 씬에 안이 있습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영화의 모든 씬에 주인공이 얼굴을 비추는 영화는 드뭅니다. 영화에 투입되는 모든 에너지가 안의 안과 밖을 보여주는데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영화인지 안의 하루인지, 안의 하루가 영환지 영화가 아닌지, 영화가 안을 따라다니는 건지 그냥 안인건지, 내가 목격자인건지 당사자인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영화의 안과 밖이 가장 가까워질 때, 바로 그 장면이 나옵니다. 안은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니 법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한 불법 수술을 받으러 밤에 혼자서 어딘가로 향합니다. (스포가 정말 싫으신 분들은 영화보고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안은 의사로부터 아무리 아프더라도 “절대 소리를 내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절대 소리 내지마"라는 말은 제가 저와 같은 영화관에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나 할 법한 요구인데요. 의사가 안에게 그런 말을 한 까닭은 단순합니다. 여기서 불법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안이 아픔을 참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어서 수술이 발각된다면, 안이 영화 내내 그토록 원하던 이 수술은 그 즉시 중단될 것입니다.


그렇게 수술이 시작됩니다. 앞에 한 영화 소개에서 빼먹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체험 영화입니다. 체험 영화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체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이 어떻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한 컷도 보여주지 않았던 감독이, 안이 수술을 받는 과정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컷 한 번을 하지 않은 채 전부 보여줍니다.


이 장면을 보고 절실하게 든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앞으로 안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고, ‘진작 처신을 잘했어야지’ 따위의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감독이 안의 과거(before)를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과거는 안이 그 뒤에 겪는 수술을 비롯한 여러 끔찍한 일들과 비교하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보여주지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그 이후(after)라는 것. 문제의 잘잘못을 따질 시간에, 차라리 앞으로 어떻게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해 집중하자는 것. 아니 그 이후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영화)이 부족하다고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보면 이게 진짜 맞는 말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왜냐면 이 체험을 하는 순간엔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너무 아플 뿐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영화를 통한 간접 체험이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픕니다. 간접 체험인데도 이렇게 아프고, 소리내고 싶고, 그만보고 싶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진짜로 아팠던 사람들에게 너무나 미안할 지경입니다. 너무 미안해서, 안이 이 아픔으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났음 해서, 수술이 중단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보고 있는 나라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영화관에 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 장면 동안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 소리도 안 났던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를 쓰는 그 기운을 저는 감지했습니다. 평소 관객들이 내는 소음에 항시 민감하게 반응했었던 저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하. 농담이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신다면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모두가 한 목소리를 '안' 내게 되는, 흡사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sing-along) 상영관을 방불케 하는 사일런스-얼롱(silence-along) 관람 경험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p.s 현재 임신중절(낙태)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특정 조건에 따라 불법이 아닌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19년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낙태죄가 폐지되었습니다만, 아직 관련한 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여전히 위험한 여지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남아있는 것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종교계의 저항입니다. <레벤느망>은 다른 건 모르겠지만 그 날선 시선만큼은 조금 부드럽게 만드는, 말하자면 '사포질'해주는 영화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시선(눈)에 사포질한다? 경고하건대, 이건 비유가 아닙니다. 제가 태어나서 본 영화 중 가장 아픈 영화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낙태에 관해서 뭔가 논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이 정도의 영화가 필요하다는 감독의 시선에 100%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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