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개봉이 너무 멀었으니 영화에 관한 정말 겉껍데기스러운 생각들만 남겨 본다.
자세한 이야기는 개봉하면 하는 걸로!
1.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단 뜨악하고 볼 것 같은데,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찰리 카우프만의 <이제 그만 끝낼까 해>다. 물론 나는 좋아하는 영화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싫어했던 것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 따르면 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지 도통 ‘추측’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진, 소위 말하는 감독의 ‘자위’ 영화라는 점이 불호의 주 근거였는데. 추측 실패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문제를 어렵게 만든 출제자에게서 찾는 것이 인간의 생존 본능이라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그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어살> 또한 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지 도통 추측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영화이다.
2.
그분들에게 다행인 것은 이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 영화에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들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갈 확률이 높다.
3.
그건 이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작품 세계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그걸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니 다음과 같이 적는 게 더 정확할 것 같기는 하다. “내 작품들, 이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쉽게 말해 <로마>, <아마겟돈 타임>, <파벨만스>와 같은 ‘거장 자전적 영화’ 계열에 있는 영화인 것.
4.
그래서 감독의 전작들을 잘 아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에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들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갈 확률이 높다. <그어살>은 <이그끝>처럼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는데, 많은 관객들에게 카우프만에 대한 이해보다는 하야오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깔려 있는 편이기 때문에 <그어살>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이 덜 이상하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
5.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식 구성을 취한다. 주인공은 이상한 동물의 안내를 받아 이상한 나라로 향한다. 이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펼쳐지는데, 그 이상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이건 물론 꿈 혹은 무의식에 관한 표현이다.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무의식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의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공을 들인 것이었다면, 이번엔 그걸 안 한 거다. 그래서 굳이 봐달라고 홍보도 안 한 것 같고.
6.
자막 없이 일단 본 다음 나무위키에서 줄거리를 확인했는데, 이렇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대사들을 대부분 놓치긴 했겠지만, 영화에서 정말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리액션들, 그에 맞춰 격동하는 이상한 세계를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은 분명 움직였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가끔은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