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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홍 Aug 17. 2023

보호자 정우성의 <보호자>


연초 디에디트(the-edit.co.kr)에 2023년 기대작 열 편을 꼽는 기사를 썼었는데, 어느새 그중 9편이나 공개된 상황이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유일한 한 작품은 <듄: 파트2>(11월 개봉 예정). 이 작품 또한 어느 정도의 기대를 채울 것이 당연해 보이므로, 사실상 내가 적은 리스트에 오른 모든 작품들은 나름의 기대에 부응한 작품이라는 게 증명된 셈.. 내가 점 찍으면 다 재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왜냐면 솔직히 누가 봐도 대작들만 고른 것이긴 했다. <파벨만스>, <가오갤3>, <오펜하이머>, <엘리멘탈>, <보이즈어프레이드> 등 그냥 개봉만으로 이미 주목 받을 영화들이었니까.


그런데 실은 그중에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정우성 감독의 데뷔작 <보호자>이다. 국내에서의 주목도만큼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아리 애스터를 뺨치는 배우 정우성이 감독 데뷔를 했다는 점, 그리고 심지어 작년 절친한 동료 배우인 이정재가 연출 데뷔작 <헌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 그런 요인들이 <보호자>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었지만 영화는 정말로 아쉬웠다. 오프닝에서부터 편집이 뭔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 불안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끝까지 그랬다.


그 오프닝엔 정우성이 연기한 수혁이 운전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대체 여기가 한국인지 중동 국가인지 알기 어려운 황토색 개활지에서, 수혁이 모는 차는 왜 때문인지 제자리에서 자꾸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한다. 그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헷갈리는 상태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운용하고 있는 기계가 잘 기능하는 것인지 리허설을 하는 중인 것인가. 평범하지 않은 인간 정우성의 평범하지 않은 운전.



‘평범’은 <보호자>에서 지독하게도 반복되는 키워드다. 10년 동안 감옥에 있다 나온 전직 네임드 갱스터 수혁은 보스(박성웅)를 찾아가 이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수혁이 없는 사이 수혁의 자리를 차지한 성준(김준한)은 그런 수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위치에 오르고 보니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수혁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말을 하는 수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보스 몰래 수혁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자신이 직접 하기는 좀 그렇고, 용병을 고용한다. 이 용병은 듀오로 활동하는 자들인데, 멤버는 우진(김남길)과 진아(박유나)다. 우진과 진아는 독특한 방법으로 살인을 하는 킬러들인데, 성준은 그들에게 수혁을 죽일 때 ‘평범’하게 죽여달라는 주문을 한다.


그렇게 두 개의 ‘비범->평범’이 서로 부딪히게 된다. 한 명은 너무나 비범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자이고, 또 한 명은 비범한 것만 잘해서 평범한 건 잘 못하는 자, 하지만 돈 때문에 그걸 해야 하는 자다. 그들이 일으키는 흥미로운 연쇄 작용은 그러나 감독 정우성에 의해 …


개봉 하루 만에 <더 문>의 누적관객수를 넘겨버린 <오펜하이머>의 흥행 추이 확인하러 전산망 들어갔다가, <보호자>의 생각보다 낮은 개봉날 관객수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적어봤다. 정우성이어도 이렇게 될 수 있구나. 정우성이 보호에 나서도, 지킬 수 없는 것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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