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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temonday Jul 24. 2019

뼈와 뼈 사이, 폭탄이 있다.

5,

4,

3,

2,

1,

펑-!!!!!!!



터졌다. 터져버렸다. 시원하게 터져버렸다.


터지기 전엔 몰랐다, 이 폭탄의 위력을. 며칠 전 밤을 꼬박 새워가며 정주행 했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대사가 떠올랐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매번 사랑에 실패하고, 새로 다가올 사랑에 두려움을 느끼던 공효진에게

조인성은 이런 대사를 날린다. "다시 사랑을 느끼는 건 한 순간일 테니까." 내 몸 속에 조용히 숨어있던 폭탄이 터졌던 날, 왜 하필 조인성의 대사가 떠올랐을까? 심지에 치- 불이 붙고, 표적물을 향해 타들어 가던 긴장감은

채 5초 남짓. 조인성의 대사처럼 폭탄이 터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줄까 말까. 밀까 당길까. 닿을랑 말랑. 이런 핵폭탄  녀석에게 밀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밀당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존재 자체로 이렇게 임팩트가 강한 상대에게 밀당이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다. 밀당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나의 노력은 그저 련해. 상대는 아주 무심한 태도로 나를 강타했을 뿐이고, 나는 공격을 피할 새도 없이 거하게 치여 휘청일 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의 것이었던 것처럼 온몸에  감기던 타격감은 정말이지 신선했다. '이제  괜찮은  같아.' 방심할  즈음 도지는  생경한 아픔,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대단한 존재감,  요추 4번과 5 사이에 숨어있던 폭탄, 디스크는 그렇게 어느  갑자기 나를 찾아온 낯선 불청객이었다.


그는 '예측'이란 단어와 가장 먼 대척점에 존재하는 상대였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날,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예측하지 못한 장소에서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날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이 땅으로 곤두박질 쳐버린 실적 그래프에 식욕을 잃어, 날로 뼈만 앙상해져 갔던 우리 팀장님이 실로 오랜만에 팀점심을 하러 가자고 제안하셨던 날이었다. 회사에 감금되어 있던 노비들은 다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타다를 불러 탔고, 광화문 낙지볶음 맛집 유정낙지로 향했다. 그곳이다. 디스크를 만난 장소. 나는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좋아하는 낙지볶음밥집 유정낙지에서, 생애 첫 응급차를 타게 될 줄은, 그것은 정말 그려본 적이 없는 그림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가 벌건 대낮에 낙지볶음밥집에서 응급차를 타게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을까? 없다, 없어.


그리고 그 날은 한편으로 응급차에 대한 나의 로망이 처참하게 깨부숴진 날이기도 했다. 전남친과 나는 '응급차 사건'으로 실로 어이없게 헤어졌었다. 이 사건은 응급차에 대한 나의 로망이 생기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를 만나기 바로 직전 여자친구를 잊지 못했던 그는 뚫린 입으로 이런 말을 하며 나와 헤어졌는데,


"119에서 전화 왔어"

"응? 누구"

"전 여자친구"


모두가 그러하듯, 쉽사리 이별의 사유를 인정하지 못했던 나는 그 전여자친구의 얼굴이 너무나 궁금했다. 남자들은 여자의 촉이 실로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촉이 왔다, 뼛속까지. 이 여자다, 싶은 사람이 바로 그 여자였다. 나와는 전혀 다른 뼈만 앙상한 청순가련형의 여자였다. 헤어지고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미련은 털끝만큼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나에게 응급차에 대한 이상한 로망이 생겼다는 것을.


'내 인생 최초로 응급차를 타게 된다면 어떤 순간일까?' 상상해보았다. 나도 아-주 청순하게,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있어도 그깟 새로운 여자친구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비련하고, 병약하지만 매력이 철철 넘치는 그런 여주인공처럼. 쓰러져도 머리통이 깨지지 않을 그런 안전한 길바닥에서 깃털처럼 쓰러지면서 타게 되길 소망했다. 웬걸, 근데 유정낙지집이 무슨 말이야, 실화야? 이건 아니잖아.


또, 갑자기 나를 강타한 디스크 쇼크에 내가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있을 때, 나보다 더 당황한 팀장님을 비롯, 모든 팀원들은 내 주위를 서성이면서 나를 애써 위로했다. 앉은 채로 눈물을 펑펑 흘리던 내 어깨를 토닥이며, '괜

찮아, 괜찮아' 하시던 팀장님의 떨리던 손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팀장님, 저는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제 앞에 놓인, 단 한 숟갈도 뜨지 못한 낙지볶음밥을 보았구요, 아주머니가 정확하게 6조각 낸 해물파전도 보았어요. 실눈을 뜨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조개탕도 보았어요. 팀장님, 어떡하죠? 저는 청순가련형 여자가 될 수 없나봐요. 그런 DNA 따위 애초에 없었나봐요, 팀장님. 응급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한껏 신이 난 나머지 보호자를 자처하고 따라 타신 팀장님에게 자랑을 한 사람이 나다. "어머. 팀장님, 저 응급차 처음 타봐요!" 할 말이 없다. 이런 사람이 나다.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솔직해지지 못하면 우리는 글을 쓸 수 없을 테니까. 솔직하지 못한 채로 쓰고 싶은 것만 써야 할 때, 우리는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다.


지금 와서 회상해보면 응급실에서의 나는 응급실이라는 장소에 맞지 않게 쓸데없이 또 건강했다. 급성 장염으로 연신 헛구역질과 토악질을 계속하던 옆 침상의 젊은 여자, 너무나 심한 디스크로 퇴원을 만류하는 의사를 뿌리치고 굳건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터로 복귀한 소방 공무원, 곡소리를 내며 아프다고 통곡하던 아주머니. 모두가 아프다고 외쳐대는 응급실에서 양팔에 주사바늘을 꼽고 마약성 진통제와 수액을 맞는 와중에도 나는 낙지볶음밥을 뒤로 하고 떠난 아쉬움이 뼈에 사무쳤다. 이런 내게 동생은 '여기서 누나가 제일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야'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 같다.


통증이 많이 가라앉은 뒤, 응급실 내원 당일날 찍은 MRI 판독과 함께 척 추 전문의와 면담이 있었다.


"허리는 많이 괜찮아졌어요? 움직임은요?"

"이전엔 숙이는 것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뭐. 완전 참을만하죠."


디스크가 터져 수술까지 했다던 척추 전문의는 나의 진료 차트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이렇게 타이핑 하였다. '완전 참을만함'


"통증의 정도를 0에서 10까지 놓고 보았을 때, 본인은 어느 정도 수준인 것 같으세요?"

"어...한 5에서 6..정도 되는 것 같아요.."


나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매정한 척추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봤을 땐, 2 입니다."

정말 냉정한 사람. 두 마디로 사람을 엄살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이번엔 내 쪽에서 질문을 던졌다.


"디스크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어떤가요? 관리만 잘하면 될까요? 지금은 전혀 안 아픈데."

"디스크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죠. 언제 다시 아플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거니까요. 지금은 별다른 처방 필요 없을 것 같고, 또 아파지면 주사 한 방 맞으러 오세요."


'까똑' 알림과 함께 빨간 숫자 1이 떠오르듯, 한창 집중하며 일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요추 4번과 5번 사이에 살고 있는 폭탄이 알림을 보내온다. 내 뼈와 뼈 사이에는 아주 요망한 폭탄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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