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녀 할머니
작년 최종면접을 끝마치고 바로 다음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최종면접 결과 따위 될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 반. 도망가고 싶은 마음 반으로 그렇게
혼자 떠났다. 일정 같은 건 없었다.
필카를 목에 걸고 동네 골목 골목을 쏘다니다가
하귀 2리 동네에서 할머니들을 만났다.
할머니 세 분이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성게를
다듬고 계셨다. 요상한 판자와 천막으로 햇볕을
피하고 계셨는데, 그 모습을 정말 꼭 찍어야 겠다
싶어 염치없이 '할머니 사진 찍어도 돼요?' 물었다.
쏘쿨하셨던 할머니는 기왕 찍을 거 걸리적 거리는
천막 좀 걷고 이쁘게 찍으라 하셨다.
위의 사진은 지금까지 내가 찍은 필름카메라
사진중 제일 좋아하는 사진.
풍경도 사물도 여럿 찍어봤는데, 확실히 사람이
사진에 담겨있는게 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학생 서울에서 왔어?"
"네, 저 혼자 왔어요."
"우리 손주도 서울 가 있는데. 우리 이번주 토요일에해녀 학교 선생님 하는데 거기 놀러와"
"진짜 가고 싶은데 저 금요일날 서울 가요."
이렇게 할머니들의 학교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작업터를 찍는데 한 할머니는 이것도 찍으라며 직접 세팅을 해주시기도.
네이 네이
찍으라면 찍겠사와요.
매번 정해진 길, 익숙한 길로만 다니던 나를
동네 골목 골목으로 쏘다니게 만들고
쫄보였던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붙일 만큼 대담하게 만들어준 우리 아빠의 필름카메라.
한동안 안찍었는데 오늘따라 되게 사진 찍고 싶다.
아이폰 말고 필름카메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