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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굥 Jun 14. 2021

게임사 홍보담당자로 산다는 것

어떤 사람이 홍담으로 적합할까?

1년 반 동안 한 게임사의 홍보 담당자로 업무를 했었다. 재직 기간이 그리 길다고는 볼 수 없지만 기업 내 홍보 담당자를 꿈꾸는, 특히 게임사 홍보 담당자를 꿈꾸는 분들에게 작은 조각의 정보라도 제공할 수 있을까 싶어 이렇게 글을 써본다. 사실 자신이 어떤 업무와 잘 맞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겠지만 원하는 전부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의 경험담을 듣는 것이 직무 적합성을 판단하는데 제2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정규직 직업을 가졌던 곳은 홍보대행사였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할 때 광고주가 "여기 아는 선배가 팀장으로 있는 회산데 한번 지원해 보지 않을래요?"라는 말에 솔깃했고 "게임을 즐겨하는 헤비 유저는 아닌데 지원해도 괜찮을까요?"라는 물음에 "No problem!"이라는 답을 주셔서 지원을 하게 됐다.


대행사에 다니는 AE라면 한 번쯤 인하우스 홍보팀에 들어가는 것을 희망할 것이다. 막 이직을 했을 때는 약간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제조업이 아닌 콘텐츠 및 서비스를 다루는 IT업계로 옮기고 싶었는데 마침 게임사였고, 중견기업에 상장사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보는 뉴스에도 종종 등장해 '우리 딸이 그래도 알만한 회사에 다니는구나'하는 느낌을 심어줄 수 있었다. 게임사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고(청바지를 입어도 되는 자율 복장, 개발자들 삼선쓰레빠 신고 다니는 건 흔한 풍경), 아침/점심도 제공되고, 복지비도 별도로 챙겨줘서 회사로 인해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의 문화, 복지는 좋은 편이었으나 나의 발목을 잡은 건 업무 그 자체였다. 어렸을 때부터 퍼즐/캐주얼 게임만을 즐기는 편식러였기 때문에 회사에서 주력으로 미는, 가장 많은 매출을 창출하는 RPG 게임과 전혀 친해질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이 RPG 타이틀은 회사에서 가장 규모가 컸기 때문에 내 위의 과장님이 담당했고, 나는 주로 스포츠/캐주얼 장르를 담당했다. 하지만 이 게임들도 내가 기존에 했던 단순 무식한 게임들보다는 상당히 복잡하게 느껴져서 게임기획팀, 게임사업팀 등이 만든 자료를 보며 게임을 공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보도자료를 쓰고, 기자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맡은 타이틀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것은 필수적이었으니까 말이다. 


바로 직속 대리님이 퇴사를 하면서 게임 홍보 이외에 CSR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되었다. 해당 업무가 그나마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해 주었다. 물론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기도 했지만 아이디어를 짜고, 발로 뛰고,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이 활력이 되었다. 메인 업무는 사내 봉사단 단장으로서 봉사단을 모집/관리하고 봉사단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해당 봉사 내용을 기록하여 보도하는 일이었다. 봉사단체와 협업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여러 부서의 분들과 친해지는 기회도 갖게 되고, 회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언론에 알리는 일이었기에 의미도 있었다. 또 게임과 CSR 프로그램을 연계해서 게임 플레이하는 일이 기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는다.     


1년 정도 일을 하면서 이 자리에는 나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떤 사람이 게임사 홍보 담당자로 적합할까?


게임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


아래는 한 게임사의 홍보팀 모집공고에 올라와 있는 지원자격이다. 무엇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게임사 홍보담당자에게 필수적인 요건이 아닌가 싶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으면 게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어렵고 기자랑 대화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만나야 하는 모든 기자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기자들은 업계에 10년 이상 몸담갔던 베테랑 기자 분들이었다. 게임 업계의 전반(각 게임사의 이슈, 업계 트렌드)을 꿰뚫고 있는 것은 물론 내가 속해있는 게임사뿐만 아니라 타 게임사의 게임(신작 게임, 잘 나가고 있는 게임 등)까지 모두 섭렵하고 있는 기자와 원활한 대화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게임을 사랑해서 관련 정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겜덕이라면 훨씬 수월하게 온보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범인이라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맡은 타이틀을 많이 플레이해보는 것은 기본이고, 여러 게임 관련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기자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업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 기자를 자주 만나다 보면 그 기간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뉴스는 뻔하기 때문에 몇 가지 핵심적인 뉴스라도 확실히 익히고 있는 것이 좋다.  


스토리텔링에 능한 사람


내가 스스로 스토리텔링에 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한다. 다시 말해 주목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담긴 콘텐츠를 좋아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관점을 비틀어보는 것이다. 기자들은 기업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통의 자료를 받는다. 내가 전달한 자료를 기사화시키려면 기사화할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홍보 담당자이다. 사실 기업에서 보도하는 자료는 뻔하다. 상장사의 경우 때가 되면 실적 발표 자료, 게임 사전예약/신작 자료, 게임 내 업데이트 자료, 게임 다운로드/매출 달성 등 게임 성과와 관련된 자료, 오프라인 행사 자료, CSR이 활발한 기업의 경우 사회공헌과 관련된 자료 등등...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자료를 작성해서 기자들 눈에 띄는게 기사화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사업팀에서 게임 업데이트 자료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다른 게임 대비 인기 있는 타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에 꼭지를 뭘로 뽑아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냥 게임 내 미니게임 1종이 추가되었다는 내용인데 이걸 어떻게 살릴까 고민을 하다가 사업팀 담당자를 추궁(?)한 끝에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SNS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이 1종의 게임이 추가된 것이었다. "많은 유저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 콘텐츠 추가!"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의 니즈를 반영해서 업데이트를 했다는 식으로 꼭지를 잡았던 기억이 있다. 맹숭맹숭한 보도자료였다면 기자들에게 전달할 자신이 없었을 것 같다.     


여러 사람과 부대끼는데 불편함이 없으며 개인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

기업에 이슈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홍보 담당자가 뉴스에 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홍보 담당자는 대외 커뮤니케이션 시 기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 내부의 사정을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회사에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외부에 전달할지 고민하게 된다. 홍보 담당자는 메인 업무가 미디어 응대이므로 대게 언론사의 기자를 상대하게 되는데, 마음만 먹으면 매일 다른 기자와 점심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언론사의 기자들을 만나게 된다. 단순히 점심 식사를 하며 회사의 소식들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녁 미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저녁 미팅은 당연히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는데 기자들이 말술이라는 이야기는 아마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물론 술을 잘 못 마시는 기자들도 있다). 기자들과 함께 술을 먹다 보면 밤이 늦을 때도 있고, 심지어는 노래방까지 가서 신나게 밤문화를 즐길 때도 있다. 술을 먹고 노래방에 가는 것도 업무의 일환이고 취해서 개가 되거나 말실수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회사 사내 직원은 기본이고 기자나 기타 외부 담당자를 낮밤 없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너무 내향적인 성격이거나 말수가 적을 경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다. 나 또한 사교적이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여러 사람을 응대하고 저녁 술자리 미팅까지 다녀오면 기진맥진하기 일쑤였다. 여러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틈바구니 속에서 기가 다 빨리 느낌이라 빨리 혼자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쉬고 싶었다. 마치 영업 사원과 비슷한 맥락으로 뒤돌아서면 잊혀지 듯 존재감이 없는 것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도록 개성이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고 말을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나의 능력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가진 개성과 캐릭터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체대 출신, 잘생긴 외모에 국가대표와 열애설이 났던 타 기업의 홍보담당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능력치를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서 저렇게라도 각인되는 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차피 홍보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일이니 그 관계 속에서 나를 알리는 일도 업무의 일부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갖추면 좋을 조건들이 더 있겠지만 너무 많이 적어놓으면 혹시라도 취준생 분들이 '나는 글렀군'하며 자포자기한 생각을 할까 봐 여기까지 적어본다. 물론 내가 적은 내용들이 꼭 정답은 아니고 내가 일하면서 느꼈던 주관적인 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20대 직장 생활의 한 자락을 차지했던 홍보팀 생활을 마치고, 광고 직무로 진로를 살짝궁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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