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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Jan 02. 2017

"정치부 기자들의 대선 전망은 늘 틀린다"

수갑 찬 이인화를 보며

"정치부 기자들의 대선 전망은 늘 틀린다." 

자주 듣는 말인데, 지금은 의미가 새롭다. 2007년, 2012년 대선에선 이런 이야기가 통할 여지가 없었다. 사회 주류의 지지를 받는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워낙 강력했던 탓이다. 야권의 후보군도 워낙 적었다. 그러니까 누구든, 이명박, 박근혜의 당선을 점쳤다. 하루 종일 국회 정론관에서 죽치고 있는 정치부 기자건, 가끔 포털 뉴스만 챙겨보는 식당 주인이건, 별 차이가 없었다. 


이젠 달라졌다. 사회 주류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없다. 반기문? 글쎄다. 반면, 야권 후보군은 확실히 다채롭다. 이변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촛불'이 있다. 제도 정치권 바깥에서 형성된 에너지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정치부 기자들의 대선 전망"이 빗나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정치부 기자들의 대선 전망은 늘 틀린다."라는 말의 진짜 의도는, '집단 사고'에 대한 경계다. 정치부 기자들은 하루 종일 국회 및 그 주변에 머문다. 다른 언론사 정치부 기자, 정치인, 보좌진, 당직자들과 대화하는 게 주 업무다. 내가 아는 정보와 남이 아는 정보를 교환한다. 요즘은 좀 달라졌다지만, 전통적인 언론 문화에선 이런 거래를 잘해야 유능하다는 평판을 얻는다. 은행의 외환 딜러들이 떠오른다. 확실히 닮은 점이 있다. 


매일매일을 그렇게 보내고 나면, '집단 사고'에 포획되기 십상이다. 정치는 생물, 거대한 생물인데, 내가 만져본 곳은 극히 작은 한 부분이다. 내가 아는 한 조각을 팔아서, 남이 아는 조각을 사야 한다. 이런 거래를 잘하려면, 내가 아는 한 조각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유능한 영업 사원은 제품에 대한 믿음도 깊다. 뛰어난 선교사는 신앙 역시 견고하다. 아울러 남이 아는 조각에 대한 신뢰도 깊어야 한다. 그래야 정보 거래에 대한 열정이 생긴다. '에이, @@가 아는 것 별 거 아냐. 인터넷에 다 있어'라고 생각하면, 굳이 @@를 만날 마음도 안 생긴다. 이런 기자들은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지내다보면, '정치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가 너무 깊어진다. 그래서 제도 정치 바깥에서 형성된 에너지에 대해선 둔감해진다. 


정치인, 보좌진, 기자, 당직자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 속에서 진행되는 정보 거래. 뇌신경 세포들의 연결이 떠오른다. 그 결과물이 '정치 커뮤니티'의 집단 사고다. 

 

'정치 커뮤니티' 바깥의 에너지가 약할 때는 이런 집단 사고가 사실상 선거 결과를 정한다. 하지만 '촛불'로 표상된 에너지가 아주 강하다면, '정치 커뮤니티'의 집단 사고는 현실의 흐름에 뒤쳐질 수 있다. 올해 대선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전망해본다. 


사실 정치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다. 새해 첫 월요일, 내 작은 다짐을 기록하려고 창을 열었다.


특정 커뮤니티의 집단 사고가 지닌 위험은 정치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내가 볼 땐, 문학 역시 심각하다. 이른바 '문단'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대중의 관심이 문학에서 떠난 지 오래인 탓에, '문단' 밖 에너지는 없다시피 하다. 그러니까 '문단'의 집단 사고가 곧 작품에 대한 평가가 된다. 대체 이 '문단'이라는 게 뭔가. '문단'의 집단 사고는 과연 건강한가. 오래 전부터 품었던 의문인데, 역시 변화 조짐 있다. 잇따른 표절, 문단 내 성폭력 등이 공론화되면서 문단 밖에서 어떤 에너지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추악한 몰락도 한몫한다. 이문열은 한마디로 바보가 됐다. 한때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이인화 역시 한순간에 고꾸라졌다. 구체제의 붕괴.  


'정치 커뮤니티' 바깥에서 에너지가 생겨나는 시국은, 변방 정치인에게도 기회가 된다. 기존 '문단'의 몰락은, 신진 작가에게도 기회다. 아무리 문학이 망했다지만, '이야기'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아니, 좋은 이야기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났다.  기존 문단이 여기에 접속하지 못했을 뿐.


나는 나이 44살 먹은 작가 지망생이다. 올해에는 기필코 '지망생' 꼬리표를 떼고 말겠다.  




수갑 찬 이인화. 대학 신입생 시절인 1993년, 그가 쓴 <영원한 제국>을 게걸스레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렇게 몰락할 줄이야.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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