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The Decision
여행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떠나기까지의 결정이다.
떠나기 위해 미루고 버려야할 수만가지들 때문에 나는 아직 유럽도 못가봤다. (못가본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만은..)
그런데 이번 여름 나는 인도행을 결정했다. 안가거나 못갈 이유는 사실 몇개 없었다. 나는 미국 명문대 졸업생이 되었고. 동시에 취준생이 되었고. 구직중이었다.
굳이 한가지 이유를 더 대면, 남는 시간에 남들 다 가는 유럽여행을 가지 왜 인도를 가나?
그런데 가기로 했다. 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5일 코스 혹은 12일 코스라는 옵션이 주어졌다. 기왕 가기로 한걸 12일을 가기로했다.
내 삶에 과도기가 닥쳤다는 것을 온 몸과 정신으로 느끼고 있었다. '과도기'라는 단어조차 이제와서 쓰지만, 어쨋던 삶이 무너져 내릴것 같다는 느낌이 나를 압도했다. 뭐가 문제인지조차 몰라서 어떤 날은, 취직에 스트레스 받는 나, 어떤 날은 인간관계에 실패한 나로 포장하기도 했다. 조성모의 '가시'라는 노래에 첫 구절..'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가사가 딱 들어 맞을 만큼,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나는 절대 가지고 있지 아니할거라던 자아들이 매일매일 어디선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여긴 어디, 그리고 나는 누구'? 내가 나를 제일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것 같았다.
인도행을 결정한 이후에도 달라진건 없었다. 줄어든 구직 옵션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인도에서의 12일이 나를 바꿀거라 생각치는 않았지만 무의식은 찾아올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으며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집착하게 되었다.
기대에 부푼 상상들을 너무 많이 했고, 그 상상들이 하나씩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지나간 시간들에 다시 상상들을 억지로 집어넣어 곱씹고 있었다. 지나간 것을 지나간대로 내버려두지 못한채.
어쩌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밤샘을 예뻐해주지 못하고 병이라 단정지었다. 그 병에 집착하다보니 그 병이 나를 집어삼키게끔 두었고, 그 병이 나의 것이라 착각하게 했으며 그 불면증이라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것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냥 두었으면 절로 사라질 뻔했던걸 나는 괴물처럼 키웠다. 사실 내 진짜 병이 무엇인지 몰라서 불면증이라는 병명을 가져다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습관처럼 주일에 성당에서 미사를 보다가 습관처럼 기도문을 외웠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나도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데 내가 누굴 용서하나.
내가 인도에 가기로 결정한 뒤, 주변 사람들은 Elizabeth Gilbert의 소설이자 Ryan Murphy의 영화인 'Eat, Pray, Love'를 자주 언급했다. 영화 속 Liz는 이태리에서 마음을 비우고 찾아간 인도에서 힘듬을 겪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한다. 그런 Liz 앞에, 텍사스에서 온 Richard는 "너 자신을 용서하기 전엔 인도를 떠나지마라"고 얘기한다.
나도 마찬가지. 지금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3시간 동안 낮잠을 자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계획된 일을 다 이루지 못해서.
거짓말 해서.
충동적인 행동을 해서.
남에게 기대려고 해서.
수다스러워서.
너무 말을 안해서.
화를 내서.
그 화를 컨트롤하지 못해서.
내가 왜 화가 나는지조차 몰라서.
술을 마셔서.
커피를 마셔서.
술과 커피를 매일 마셔서.
쇼핑을 좋아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 의식때문에 매일 아침 옷장앞에서 시간을 떼워서.
사랑에 빠져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너무 많이 주어서.
사랑을 되돌려 받길 원해서.
사랑 받는 방법조차 몰라서.
이 힘듬을 겪고 있어서. 이겨내지 못해서..
이렇게 힘들게 글을 쓰고 있어서.
지금 이순간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용서할수 없어서.
이 리스트가 더 길어질 수 있어서..
어쩌면 용서받지 못할 일은 한개도 없다. 내가 고해성사를 자주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고 남의 남자를 빼앗지도 않았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라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렇게 쓸모없는 이유들로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잔 낮잠에 나 스스로를 갈구고 되돌려 받지 못해 상처받은 나 조차 보듬어 주지는 못할 망정, 과거의 나를 원망하고 있다.
7월 28일, 인도로 떠나는 날까지 약 한달.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이 여행을 기록하고 싶다. 얼마 전, 쌓였던 감정이 북받치고 친구들에게 서운해서 홧김에 5일동안 있던 자리를 연락도 없이 떠났다. 내가 해보지 않은, '일탈'이라는 단어조차 붙이기 부끄러운 소심한 일탈이었다. 인도로 떠나는건 10% 정도 더 큰, 나에게는 너무 생소한 일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