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인지한다는 것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지 죄를 모르는 거다. 모르고 진 죄는 셀 수가 없잖아”
노희경 작가의 최근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대사이다. 칠십몇 평생을 한결같이 가부장적이고 버럭을 일삼던 꼰대 김선균 할아버지가 (극 중 신구) 이혼위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성추행을 당한 딸을 따뜻하게 감싸 안지 못한 죄, 아프다는 와이프를 내팽개친 죄, 집안일엔 손하나 까딱하지 않은 죄, 길 가는 누구에게나 반말을 찍찍 내뱉은 죄... 수갑 채워 콩밥 먹을 수준의 죄들이 아니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반복적으로 잘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 그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주는 상처를 알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말하고 있다.
이혼을 요구하는 문정아 (극 중 나문희) 할머니가 집을 나가자, 김선균 할아버지는 정아의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자식들에게까지 전화를 돌리며 다짜고짜 "와서 밥해" 라며 버럭 한다. 주인공인 완이 (극 중 고현정)은 "제가 왜 아저씨 밥을 해요?" 라며 따지고 들지만 막무가내이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김선균 할아버지는 21세기에 사라져야 할 인물이자 드라마 설정에 딱 알맞은 '노답 꼰대'이다. 그런 김선균 할아버지가 깨달음을 얻는 에피소드에 다다르자 시청자인 우리들도 모르고 짓는 죄가 참 많을 것이라고 자각하게 된다.
관계 속의 힘듬은 여러 종류로 나타나는데, 어떤 힘듬은 서로의 이해 부족이나 잦은 잘못들로 생겨나는가 하면, 어떤 힘듬은 단순히 마음이 잘 맞지 않는데에서 생겨난다. 취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억지로 관계를 지속해 나아가려 하다 보니, 나의 경우엔 어느 순간 내가 모르는 나의 잘못이 이 힘듬을 만들어냈다고 믿게 되었다. 분명 나의 어떤 부족함이 문제라고.. 자책이라기 보단 성찰을 하고 싶었다. 김선균 할아버지처럼 모르고 짓는 죄를 지으며 산다는 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준 상처들에 대해 무감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달라지기로 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의 힘듬을 내가 변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기도를 하지 않아도, 명상을 하지 않아도, 몇 시간에 걸쳐 비행을 하여 인도까지 오지 않아도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굳이 여기까지 와서 깨닫고 달라지려고 애를 쓰는 것이 억울하지만. 그래도 한번 달라져보기로 했다. 변화를 일으키려 애를 쓰다가 정말 달라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지 시험이나 해보려고 한다.